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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직제자 중 현재 최고참인 타다 히로시多田宏 9단(1929~)의 인터뷰입니다. 1929년 출생. 아이키카이 9단. 1950년 와세다 대학 가라데부 재학 중 아이키도 본부도장 입문, 우에시바 모리헤이, 우에시바 깃쇼마루에 사사 1964년 이탈리아 로마로 파견, 아이키도 보급 1971년 일본 귀국, 아이키카이 본부 사범 활동 재개 아이키도 본부도장, 방위청, 가쿠슈인学習院 대학, 게이오慶應 대학, 도쿄대학 아이키도 기렌카이気錬会, 와세다 대학 아이키도카이合気道会 사범. 아이키도 타다숙多田塾 주재. 국제아이키도연맹 위원.

무도를 접한 건 언제인가요?

제가 어릴 때부터죠.2차 세계대전 전에 일본인은 모두 그랬어요.초등학교에서 하거나,우리 집은 활 쓰는 법이 전해지고 있었죠.집 뒷마당에 아주 훌륭한 표적이 있었어요.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쓰던 적색과 흑색이 섞인 활을 제가 물려받았죠.그걸로 기본을 배웠어요.

자택에서요?

음, 내 집에서.옛날부터 그랬어요.헤키 류 치쿠린파 궁술(日置流弓術竹林派).아주 드문 유파예요.쓰시마에서500석 이상 받는 (상급) 무사가 하는 정도.집에 활터가 있는데,제자 따위는 받지 않았어요.우리 집의 가전 같은 거였으니까.옛날에는 모두 그랬어요.집 안에서만.응, 가족끼리만.집에 방이 있으면 그걸 도장으로 써서거기서 수련하고.마술(馬術)도 같았어요.제대로 된 무사는 집에 그런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수련했죠.학교에 갈 필요가 없죠.물론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도 있죠.

그때는 아직 도쿄 지유가오카(自由が丘)였나요?

도쿄, 지유가오카.태어날 때는 도쿄대 병원이었고,그때는 아직 니시카타마치.아버지기 도쿄제국대학에 있을 때였죠.1933년에 지유가오카로 옮겼어요.재미있었죠.큰 집이었고, 지유가오카는 아직 변두리였어요.그러다가 초등학교에서 검을 시작했죠.학생 시절에는 가라데를 시작했어요.후나고시 기친 선생 밑에서.그게 쇼토칸 류...쇼토칸.그렇게 사람들이 불렀죠.선생은 그리 부르지 않았어요.쇼토'는 후나고시 선생의 호였으니까요.시부야 구의 쇼토 지역과 같은 한자예요.쇼토(松濤)는 '솔잎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파도소리 같은 것'을 말하는 겁니다.

후나고시 선생을 만나셨나요?

그야 몇 번이고 만났죠.후나고시 선생이 도장에서 귀가하실 때배웅한 적도 2, 3번 있었죠.

우에시바 도장에 입문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선생의 존재야 어릴 때부터 알았어요.대부분 전쟁 중이었는데,내가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어요.유명한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데, 대단한 무도가라고.야노 이치로라고 다이이치 생명의초대 회장이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였어요.히비야 고교에서 검도를 시작해서 도쿄대까지 계속했고,나중에 실업단 회장인가도 했고,대일본무덕회 검도 범사이기도 했어요.그 야노 선생이 우에시바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에 비한다면야 나는 아기와 다름 없다고 했죠."그런 얘기를 들었어요.1941년에 제가 만주에 갔을 때,그때가 만주국 건국 10주년이었어요.일본의 무도가들이 거기에 모였어요.만주의 신무전에서 마지막 황제 부의앞에서 연무회가 있었죠.거기서 우에시바 선생의 연무가 대단했다고,나도 가보려고 했는데,어머니랑 누나가 잔소리가 심해 못갔죠.제 사촌은 봤죠.

선생님은 당시 몇 살이셨나요?

12세였죠.그때부터 전쟁이라 아주 어려웠죠.그게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와세다 가라데부에서 봄방학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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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히로시, 대학생 시절

그 얘기가 또 나왔어요.우에시바라는 인물이.다케시타 해군 제독이 그의 후원자로,외국인 사관을 눈 깜짝할 새에 집어던진다고.하라다 미츠스케, 지금 런던에서 가라데 전문으로 있는데,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있는 오시마와 그 얘기를 했죠.(오시마 츠토무, 쇼토칸 가라데 오브 아메리카 설립)그 당시 주장이었던 다케다 씨가 말하길,"그러고 보니, 내 친척 중에 우에시바 선생이 쓴 무도에 대한 책에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어.라고."이름이 뭐였더라, 그때는 아주 잘 알고 지냈는데.그럼, 흥미가 있으면 주소 알려줄게하고.와카마츠 102번지와세다에서 걸어서 금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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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시바 도장, 신주쿠 와카마츠 쵸

지금 세계본부도장이 있는 그 자리..?

그래요, 지금은 와카마츠 쵸 17-18이지만,당시에는 102였어요.

입문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했나요?

아뇨, 이미 전쟁이 끝난 후였으니.일반적으로 도장이란 곳은 유지하기에도인원이 모자랐으니까.그러니 직접 가서 허락을 받는 식이었죠.

도장 내에 여전히 피난민이 있었나요?

있었죠. 3, 4년 더 있었어요.피난민 한 가족이 있었죠.80장 다다미(약 40평) 중 20 다다미(약 10평)을 떼어줬고,그 20 다다미 쪽에서 살고 있었죠.

수련 일정은 어떠했나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아침 6시 반부터 7시 반,저녁 6시 반부터 7시 반, 그것뿐.그 외에는 자유, 하루 종일 거기서혼자 수련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그야... 깃쇼마루 선생은 직장에서 일을 했고,학생이 5, 6명 밖에 없었으니,옛날처럼 재벌이 도장을 후원하지도 않았고.그런 시대는 지나가버렸기 때문에일을 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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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시바 깃쇼마루, 오사카 상사 앞에서

당시 큰선생의 행적을 알려주시겠습니까?

큰선생은 도쿄, 이와마 그리고 여행. 이걸 반복했어요.칸사이 방면에 갔다가 도쿄에 왔다가, 다시 이와마로.그리고는 다시 이와마에서 도쿄에 오셔서,도쿄에서 칸사이 지방으로.오사카의 스이타, 와카야마의 타나베,그리고 히키츠지 미치오 선생의 도장이 있던 신구.그런 식이었죠.선생이 입문한 당시,

이미 '아이키도(합기도)'라고 불리고 있었나요?

내가 입문한 당시에는 아직 그렇지 않았어요.아이키부도(합기무도)'라고 불렸죠.공식적인 이름이 아니었어요. '합기무도'라고 하지만.그러다가, 내가 와세다 대학 학생이었을 때,클럽을 만들려고 했죠.우에시바 도장에서 선생님이 강습회를 시작했어요.큰선생께 오시지 않겠냐고 여쭸죠.그랬더니 '보고한 다음 초청해라'고 하셨죠.그래서 당시 교수였던 도미키 씨에게 부탁했죠.그때 '아이키부도'라고 하는 것보다는,시대가 그랬으니,아이키도'라고 해서 올렸죠.하지만 그 전부터 '아이키도'라고도 불렸어요.대일본무덕회에서 할 때, '아이키도'라는 부에서 그 명칭으로 하고 있었죠.아이키도'라는 명칭이 다양한 맨손무술을

통칭하기 위한 게 아니었나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우에시바 선생의 아이키도를 말한 거였죠.그렇지만 1942년 만주에서 열린 연무회당시의 팜플렛을 사촌에게 받았는데,잃어버리긴 했지만, 거기에는우에시바 류 합기술'이라고 적혀있었어요.소설에도 나와요.우에시바 류 합기술'이란 건.어떤 어린이용 소설이었죠.기욤은 안드레 노케 밑에서 아이키도를 시작했습니다.

노케를 알고 계신가요?

노케 씨가 들어왔을 때, 내가... 아마 20대 중반,노케 씨가 40세 정도였어요.사실 노케 씨가 오기 전에,1951년에 모치즈키 미노루 씨가,사쿠라자와 뇨이치에게,사쿠라자와 뇨이치는,거기서는 '조지 오사와'라는 이름이었죠.조지 오사와. 마크로바이오틱스의.거기에 그 사람의 관계로, 프랑스에서 관련자들을모아놓은 곳에 가게 된 거죠. 거기서 시작한 거예요.그다음 해에는 아베 타다시가 갔고.그게 1952년.노케 씨는 아베 타다시에게 배웠습니다.노케 씨가 온 뒤로 프랑스인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어요.프랑스 대사관의 관계도 있었고.프랑스 대사관이 후원한 연무를 우에시바 도장에서 했죠.사진도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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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시바 도장에서 열린아이키도 연무, 요미우리 신문, 1954

요약하자면, 노케 씨는 아베 씨에게 수년동안 배우고이건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온 거죠.그에 대한 기사가 요미우리 신문에 나왔어요.처음에는 유도를 했다고 해요.거기서 '훌륭한 기술을 익혔다'고 한 후,그다음 해에 아베 타다시에게 가서 수년간 배운 거죠.그리고는 좀더 배우고 싶어 일본에 와서 3, 4년을 있었죠.안드레 노케 씨는 선생의 2교가아주 아팠다고 자주 말했습니다.젊었으니까.20대였으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수련만 했는데.나는 직장도 없었고, 아이키도와 일본 무도연구에만 전념했으니까.노케 씨가 있을 때 연무회 같은 걸 하기 시작했어요.그가 돌아갈 때 내가 기억하기로는,당시에는 아직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야했는데,분명 미국 선박이었어요. 배웅했을 때.돌아갈 당시 44, 45세였는데,귀국하고나서부터는 몰라요.나중에 내가 1964년 10월 이탈리아에 갔을 때,1965년에 프랑스에 있던 노로에게 초대받은 적이 있어요.그때, 노로 씨가 다른 한 사람과 같이 연무를 보러 왔기에인사를 한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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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히로시, 안드레 노케, 야마구치 세이고. 1959

공개 연무가 시작된 게 그때부터인가요?

처음으로 공개 연무가 있었던 게타카시마야 백화점 옥상...연무회를 할만 한 곳이 당시 거기밖에 없었어요.무도관은 물론 있지도 않던 때고.연무를 하는 데 쓸 수 있는 공간이란 게 없었어요.아직 히비야 공회당을 빌릴 큰 돈은 없던 때였어요.타카시마야에서 하고, 그다음에 미츠코시에서 하거나 시부야의 토큐 백화점 옥상에서 하다가,그 다음에는 미용학교 강당을 빌리거나신문사 강당을 빌리거나.여러 곳에서 했어요.하지만, 정식으로 제1회라고 아이키카이가지정한 것은 언제였더라...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깃쇼마루 선생은 큰선생에게서 공개 연무 허가를받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하는데요.일반에게 공개하는 건 싫다고 했죠.원래 일반에게 공개하는 게 아니에요.대동류도 그랬죠.다케다 소카쿠 선생도 일반에게는 공개하지 않았어요.옛날 무도가는 다 그랬어요.특정한 사람에게만 가르쳤어요.옛날에는 '오토메와자御留流'라고 불렀죠.오토메와자는 번藩 내에서만 가르치고다른 번에는 보이지 않는 기술을 말해요.그거야 그렇잖아요. 내가 아는 기술을다른 사람이 알면 내가 불리해지잖아요.또 하나의 이유는 너무 많이 알려지면망가져서 그래요.그러니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가르치면서 아주 조심하는 거죠.그런 시대였어요.2016년 2월

아이키도를 직업으로 삼기로 한 것은 언제였나요?

직업이 아니요.어려운 부분이긴 한데,직업은 아니지만,이건 아주 연구할 만한 거죠음...옛날엔 말이죠,우리 집에 궁술이 전해진 것처럼,제자 따위는 받지 않았어요.한 사람의 직업이란 주군을 모시는 거였죠.사무라이로서.생활을 영위한다는 건,아이키도로 생활을 영위한다든가 그런 발상이 아니예요.연구한다는 거죠.어려워서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아이키도계에는 무기술의 중요성에관해 갑론을박이 있습니다.무기 사용이라 하면,기본 체술을 제대로 했을 경우,무기도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건아이키도의 경우뿐만이 아니예요.전통 무술이라면 모두 그런 방식이예요.유술은 모든 무술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그러니,몸을 쓰는 방법, 기술을 열심히 하다 보면,검을 들면 검을 쓸 수 있고창을 들어도,나기나타를 들어도,장을 들어도,뭐든 쓸 수 있다는 거.그러니 그 '호흡', 타이밍을 잡아내기만 하면사슬낫이든 뭐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무예18반 전부를.그러니 쓸 수 있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인 거예요.특별히 따로 배우는 게 아니예요.물론 검을 쓰려면 검에 익숙해져야 하고,그 검의 특성을,잘 벨 수 있도록잘 벼려야죠.창이라면 창의 특성을 자유로이 써야 하고,나기나타라면 나기나타의 특성을.그런 필요는 있어요.하지만,아이키도라면 검을 해야, 장을 해야',그건 좀 이상해요.뭐든 쓸 수 있게되는 게 진짜예요.그렇게 쓸 수 있게 되는 거예요.아이키도만 그런 게 아니예요.음... 메이지 시대에,초등학교, 중학교의 교장 선생이,아이들을 위해 '무술 체조'란 걸 만들었어요.와타나베라는 선생이 쓴 건데,메이지 무도사'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어요.그냥 보통 보는 체조뿐만 아니라,일본에는 무술이 있으니,이 무술 체조를 잘하면,검, 창, 나기나타, 장 모두 쓸 수 있다.'학교 선생이 말이죠.그렇게 아이들에게 하게 했어요.그런 거예요.그러니 아이키도를 제대로 한다면,기술을 제대로 한다면,사용법이 올바르다면,합기검合氣劍이 되고,합기창槍이 되고,합기나기나타薙刀가 되고,합기장杖이 되고,또는,뭔가 던진다면 합기를 쓴 던지기가 되고...호흡말이죠.그런 거예요.그러니까,현대 유도나 검도를 보자면그런 발상이 나오지 않아요.현대 유도나 검도를 보자면하나의 룰을 바탕으로,서로 경쟁하는 체계예요.그래서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아요.유도에는 유도의 룰로 하고,그러니 룰에 맞게 테크닉이나 사물을 생각하게 되요.현대 유도나 검도를 보면,검도나 나기나타나 서로 별개로 본단 말이죠.그렇지 않아요.발상이라든지, 역사적으로 생각해보면발상이 달라요.그러니 '아이키도로,검이 되고, 창이 되면 나기타나도 된다.'그건 당연한 거예요.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요.시간은 필요해요.익숙해져야 하니.사람들이 하지 않을 뿐이에요.하지 않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하지만 사방던지기를 차근차근 제대로 하면,그게 바로 사방베기가 되고,장도 되고,창도 팟 하고, 팟 하면,사방찌르기가 되니까요.공부가 얼마나 되어있냐의 문제예요.큰선생도 그런 식이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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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지이 무도사', 와타나베 이치로 저, 1971

혼자 연습하는지 여부의 문제인가요?

그런 문제에 있어서,그건... 그런 물건 사용법에 익숙해질 필요는 있어요.하지만,근본이 되는 사고방식이 있어요.그런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있어요.사물을 동화同化적으로 볼 것인가,분리적, 대립적으로 볼 것인가.'그런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어요.이걸 이해 못하면 그 문제는 풀 수 없어요.

큰선생은 혼자서 연습을 많이 하셨나요?

큰선생은 말이죠, 아야베綾部에서,숲 속에 둥근 표적을 팔방八方으로 매달아 놓고,그걸 5m 길이의 창으로 하루 종일매일매일 찔러서 자유로이 쓸 수 있게 됐어요.나중에,큰선생이 다케시타 대장의 소개로아야베에서 도쿄에 옮기게 되었을 때,높으신 분이 큰선생의 창 솜씨를 보고,어... 야마모토 곤베이,러일 전쟁 당시 해군대신이었는데,나중에 수상이 되는 분이죠.그분이,메이지유신 이후 처음으로 살아있는 창을 봤다'라며 칭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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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들고 있는 우에시바 모리헤이, 이와마(1957)

큰선생 자신도 '창에는 자신있다'고 하셨죠.쌀 한 가마 던지는 거야 식은 죽 먹기'라고.이쪽에 쌓여있는 60kg짜리 쌀 가마니를 푹 찔러서휭 하고 던져서 저쪽에 착착 쌓는다고.그런 건 애들 장난이지'라고.그렇게 말씀하셨어요.그러니까 아이키도를 제대로 했다면,그 기술의 움직임이나 흐름을검이나 장으로 표현하고 싶다'면,열심히 하면 가능하게 되겠죠.안 하면 못하는 거죠.혼자서 연습하는 것과 파트너와 연습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혼자 움직이는 게 먼저라는 건 정해진 거고,혼자서 못 움직이면 둘이서도 안 돼요.2인 연습이란 건,상대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식의 2인 연습말이죠.그렇게 하면 안 돼요.아니, 말하자면제일 처음부터 새겨두어야 할 게 있어요.자신의 몸과 마음 사용법을 기본으로 한다.그렇게 하면 어떤 것에도 대응할 수 있다'라고.그런... 음,근본적인 발상이 없으면 깨닫지 못해요.자기 몸과 마음도 추스르지 못하면서둘이서 짝을 지어서 뭘 하겠어요.말하자면 그런 걸 인공적인 수련이라 하죠.상대가 이리 하면 나는 이리 한다' 하는.의사를 예로 들면 수술이란 게 그렇잖아요.기본적인 기술도 없으면서어떻게 수술을 할 수 있겠어요.자신의 몸과 마음 쓰는 법을 제대로 할 것.'그러면 기술은 자연히 잘하게 돼요.이게 전통적인 사고방식이예요.검술도 검 쓰는 법이긴 하지만,결국은 마음과 몸 쓰는 법이예요.그걸 잘 분별하면서 단련하라'는 게전서伝書에 쓰여있는 가르침이에요.

본부도장에서는 기氣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왜 그런가요?

음... 그런 건 스스로 잘 연구해보라는 거.자기 목숨을 사용하는 법이니그런 건 스스로 잘 연구하라는 거.옛날부터 대부분 그래요.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아니, 스스로 잘.어릴 때부터 이런 얘기를 듣지 않으면 어려운 얘기예요.어릴 때부터.예를 들어 궁술.왜 '맞고 안 맞고에 연연하지 마라'고 하는가.왜 담담하게 해야 하는가.바로 자기 몸과 마음 쓰는 법이에요.이런 거에 흥미가 없으면 불가능해요.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하나는 기의 흐름.큰선생은 말이죠,수련이란 기의 흐름을 단련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전서에 말이죠.그걸 제일 처음 쓴 게내가 입문했던 1950년아이키카이지合氣會紙'라는 회보에 적혀있었어요.거기에 그리 쓰여있어요.지금은 '합기신수合氣神髓'라는 책에 쓰여있어요.아이키도의 수련법은 기의 흐름과 단련에 있습니다.'단련이란 건, (상대가) 이렇게 강하게 잡게 하는 것.이게 바로 기술이 되지는 않아요.

왜냐?

이렇게 잡으려고 다가가면 목이 뎅겅 날아가니까.매번 할 게 못되잖아요.결과를 알고 하니 나쁘진 않지만.이게 뭐냐면, 단단히 붙잡혀도여기에 반응하지 않는 것.그러니 어딜 붙잡혀도 내 마음을 대상에게뺏기지 않은 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죠.그런데 기의 흐름이란 건 좀 더 복잡해요.하나의 기술을 할 때 순서를 익히고,삼각이란 것도 있고,각이 이런 식으로 바뀌고,또 각이 이렇게 바뀌고...이게 이치적으로는 원과 같아요.그리 되면 '부웅~~~~~~~'하고,몸의 흐름이 나오죠.여기에 자신의 호흡, 요가에서 말하는 프라나야마...우주의 기를 받아들여서.기의 흐름의 연마'라는 건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연마하는 거예요.그걸 기술과 동화시킵니다.그러니까 기술은 별로 아이키도가 아니더라도몸을 고치려고 할 때호흡, 생명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것.그것도 '기의 흐름의 연마'예요.기술과 이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동화시키는 것.현대적으로 쉽게 설명하자면,큰선생은 '기의 흐름의 연마입니다.'라고 하신 거죠.

큰선생은 '기의 연마'에 대해서 명백하게 말씀하셨나요?

음, 그때 말씀하셨어요.쓰신 글에도 나와있고.다만 기의 흐름이란 것은,기'라는 단어를 열심히 연구해야 해요.그렇게 연구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왜냐 하면,기의 연마의 흐름'이라는 말만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해봤자,이게 어떠한 세계관이나 우주관인지,소위 일본적인, 아니 일본적이라기 보다는 동양적인,인도나 중국이나 아니면 일본의 신토 사상에서 나온이게 다 어떤 흐름인지 잘 알아야만 해요.하지만 독자적인 거니 다른 것과는관계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다른 모습으로 유럽이나 미국에 전파되기도 하고.큰선생의 강의를 이해하는 게 대단히 어려웠는데,나카무라 템푸 선생을 만난 이후 쉬워졌다고 하셨습니다.나카무라 선생을 만나 깨달은 게 뭐냐면,전서를 읽거나 하면서,일본의 전통 문화에 있는 다양한 사고방식을이해한 다음에 와라'고 했어요.무슨 말이냐면,큰선생의 말씀이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하는데,조금 달라요.우에시바 선생의 말씀을,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다양한전통적 사고방식을 아는 게 요구된다는 거죠.그 속에 있는 생각을 알기 쉽게 되었다는 거.우에시바 선생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우에시바 선생의 말씀은 근본적으로진언밀교真言密教예요.그 위에 신토라든지 고서기라든지가 얹혀있죠.그걸 이해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기가 힘들죠.보충하는 이야기로 스기야마라는 분이 있는데,스기야마 히코이치라는 분.템푸카이天風会의 선배.나보다 8살 위인가...고쿠가쿠인國學院 대학에 가서 신토를 배웠죠.이 사람에게는 큰선생의 말씀이 이해하기가 쉬웠대요.의미하는 바가,(신토의) 신에게는 의미가 있어요.여러가지로. 죽 연결되면서.뭔가를 평범하게 말한다든지.그건 그 얘기야'라 들으면서 알게 되었죠.하지만,대략적인 부분은,감을 잡게 되어있어요.어릴 때부터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보며자라니까 대략적인 부분은 바로 알죠.느낌 정도는.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지는 못하죠.템푸 선생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은전서 등을 읽으면서

이런 사고방식, 아니 실천하는 법을 왜 하는가?'하면,

이런 이치가 있고 서로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거죠.지금도 관계가 있어요.멘탈 트레이닝'이라든지 '멘탈 매니지먼트'라는 것들,이런 건 모두 라자 요가나 하타 요가를연구하면서 나온 거예요.일본 문화라는 것도 인도에서 나와중국을 거쳐서 나온 거고.그리고 일본 문화 대부분의 기원은홍법대사弘法大師니까.신토와 불교의 융합.그러면서 신불혼합神仏混合이 일어나고.우주와 인간의 연결을 이루려는 것,라자 요가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거죠.이게 또 일본의 국가 사상이 되고.홍법대사의 가르침이 덴노를 통해서 말이죠.이게 일본 전체에 퍼지고.무도 속에도 들어가 있는 거죠.

매일 수련에서 이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그걸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에게 휘둘리지 마라.'집중'과 '집착'의 차이를 아는 거.그게 가장 큰 문제죠.그걸 상냥하게 어떤 식으로 실현하느냐.'일상 생활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그건 철두철미한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기술인 건가요?

아니, 숙련되는 것이라기보다는세상에 스며드는 거죠.아주 어려운 문제예요.모든 것에 관계가 있죠.생명력을 높이는 법과 쓰는 법이란 문제로생각해보면 이해하게 될 거예요.생명력을 높이고생명력을 쓰는 것.이것과 무관한 사람은 없어요.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계가 있어요.몹시 어려운 문제예요.어렵지만 거기에 중점을 두어야 해요.

큰선생이 수련한 것도 그건가요?

큰선생이 태어난 곳은 키이 타나베紀伊田辺로고야산高野山 아래. 선생 가족은 진언밀교를 믿었죠.그렇게 어릴 때부터 죽,이 가르침을 공경하면서산야를 돌아다니거나 절을 순례하거나 했어요.그러다가 35세가 되었을 때,데구치 오니사부로를 만나게 되죠.하지만 선생의 말씀를 죽 듣다 보면,전통 속의 가르침을,선생 류流로 이해하고 계시고,정리하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었어요.

그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사실 여러 판본이 있어요.인쇄판도 있고 등사본도 있고.2차대전 종전 후에 나온 등사본은 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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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유술전서 aka 무도연습, 1934년 출간 / 아이키도 마키노이치合気道巻之一, 1954년 출간

그건 종전 후...몇년이었더라...1945년 말 무렵이었던가...당시의 큰선생의 기술과는 좀 달라요.선생의 그 이전 기술 또는그걸 기록한 책을 다시 카피한 거니까.그래서 선생님은 이에 대해이거 좀 곤란한데...','다른데...'라고 말씀하셨어요.대부분 큰선생과 상의 없이 만들어진 거니까...

큰선생은 저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큰선생은 책을 써보겠다고 자주 말씀하셨죠.하지만 기술이 계속 변하니까, '아 이거 어렵구먼.'기술이 똑같으면 쓰겠지만, 그때의 기술이 지금은또 변했으니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뽑을 수 밖에.쓸려고 하는 찰나에 이미 새로운 게 나오고 있는데

책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쓰지 못하겠구먼...'선생님은 "아이키도는 현대에 살아있는 무도다."라고자주 말씀하십니다.그 말은 깃쇼마루 선생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에요.내 아버지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현재에 살아있는 무도를목표로 한다'고 하셨죠.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어요.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어요.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이런 뜻이겠거니 하는 건 있지만.우에시바 선생과 깃쇼마루 선생이어떤 의미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선생님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마음과 몸의 양성을 중심으로,무도에서 얻은,무도라는 아주 작은 것을,생명의, 태어날 때 가진 기질을 통해서,인간의 생명과 마음을, 또는 마음과 몸을,

어떻게 현대 사회에 플러스로 만들 수 있을까?

파괴적이 아니라, 플러스적으로.그런 걸 목표로 했던 게 아니었을까...무술의 근원은 사랑이다.'라고말씀하셨으니.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우리가 보통 말하는 사랑이 아니에요.우주의 사랑'입니다.

선생 본인의 아이키도는 어떻게 변화했나요?

학생 시절에는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었어요.하지만 역시 큰선생과 템푸 선생의 말씀을 듣다 보니,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신경을 쓰게 되죠.어릴 때야 맘을 먹고 치열하게 하지만.소위 싸움 기술로서 말이죠.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무도는 '도道'라는 글자를 붙이면서실전에서 멀어졌어요. 사실은.시대가 소위 메이지 시대 이후, 외국과의 전쟁...이런 걸 거치면서 사회가 '싸움 기술'이란 주제에 대해얘기하는 데 질려버렸어요.이건 사회적인 활동과,큰선생이 수련하던 시절 사이에갭이 발생한 거죠.이게 좀 어려운 부분이에요.특히 쇼와 시대부터는.비전에 씌었다'는 말이 있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제 아버지가 활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사무라이 시절에 태어나신 할아버지는마술馬術과 궁술弓術에 아주 뛰어나셨습니다.할아버지가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해요.다른 사람의 기술을 비난하지 마라.,그리고 "활에 대한 책을 읽지 마라."그렇게 말씀하셨데요.왜냐 하면 헤매게 되니까.이 선생은 이리 얘기하고,저 선생은 또 저리 얘기하고." '가장 좋은 걸 골라서, 스스로.' 식으로는절대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고."누더기가 된다.고.뭔가 제대로 배우려면 선생이 말하는 그대로 하면서,그걸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에만 전념해야 해요.그리고, 궁술 책에 보면 때로 엄청 어려운 얘기가 나와요.아이키도에도 그런 일이 자주 있어요.아주 높은 수준의 얘기를. 나는 여기 있는데.자기 발밑은 안 보고 위만 보면서 그걸 따라하려고 하죠.할 줄도 모르면서.그걸 '비전에 씌였다'고 하죠.아이키도 하는 사람 중에도 많아요.(일본 중학교 과정에 무도 과목이 실행된 이후)

아이키도 수련은 현재 어떤 식으로 변했나요?

그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이 있으니.예술과도 비슷하죠.무도를 일본어로는 예술이라 하죠.메이지유신 당시 영어의 'art'란 단어가 소개되었을 때,그에 맞는 단어가 없으니 '예술'이라 번역했지만,예술'이라 하면 '검술'을 의미하는 거였어요.일본어의 '예술'은.원래 무술을 의미하는 거였죠.그래서 '텐구 예술론'이라는 제목인 거에요.여기서 '예술'이란 '무술'을 의미하는 겁니다.일본어에서는.이게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문부성의 교육 체계 문제도 있고,스포츠화하는 게 좋다, 스포츠화 하면 변질된다...그 사람의 사고 방식에 따라 다른 거죠.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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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구예술론. 텐구가 설파하는 무술 강론.(1729)

어째서 그런가?

모두 한자리에서 동시에 똑같은 것만 하면독특한 것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어요.그리고 또 한 가지, 가장 어려운 점인데,무술을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경찰관이 체포술을 한다든가, 군인이 전쟁에서쓸 기술을 훈련한다든가 그런 건 있겠죠.일반인이 교육으로서, 그런 걸 상식이라며 배우는 시대가 아니에요.이런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거죠.이게 가장 어려운 점이에요.하지만 사실은, 누구든지 뭔가 하나 정도는art'든 '예술'이든 훈련하는 게 좋아요.춤, 그림, 음악 등 뭐든 좋으니 뭔가 자신의 마음과 몸을 갈고 닦아 표현하는 것을 누구나 하는 게 좋다고 봐요.그건 분명해요.그러니까 '아이키도를 하려는 게, 호신술, 경찰 체포술,군대 격투술로서 하고 싶다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하나의 일본의 전통 기술의 하나로서감각이라든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든지그런 걸 갈고 닦는 데 좋으니까.거기서 '왜?'라는 문제가 나오는 거에요.집중'과 '집착'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최대의 문제가.

선생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극복했다기 보다는기술을 익히고 있자면 무의식 중에집중과 집착이 다른 거라는 점은수련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알게 되어 있어요.예를 들면, 60, 70세... 내가 지금 86세인데,지인들이 병, 부상, 그리고 슬픈 일...그러니까 자기 자식이 먼저 죽는 걸본다든지 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마음이 존재하는 방식과 쓰는 법.집착'이 뭔지 알겠어요?집중'과 '집착'의 다른 점? 어떻게 이해하고 있어요?

집착'은 사물에 사로잡힌 거고,집중'은 거울처럼 투영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무엇보다도 장자가 말이죠.마음 쓰기를 거울과 같이 해야 한다'고 했어요.3천 년 전에요.인간 3천 년의 역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거죠.틀림 없이.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면,여기에 이렇게 붙는 걸까. 집착은 마음이 사물에 들러붙는 거고.집중이란 것은 거울처럼 사물을 비추는 거니자유롭게 대응이 가능한 거죠.만일 병이라면, 병을 고치는 데만 온 신경이 쏠리면서마음을 맑게 유지하는 게 아주 힘들어지는,그런 문제도 나와요.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면대부분 이게 원인이에요.전쟁부터 전세계에 걸친 동란, 개인적인 작은 괴로움까지모두 이게 원인이에요.이런 부분을 열심히 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하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는 건가르쳐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이치를 알았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열심히 찾아야 한다는...?

음... 그걸 어떤 식으로 찾아낼 것인지가 아주 중요해요.오늘 정말 감사합니다.별 말씀을.

 한국어 번역, 자막 : 성주환 AikidoK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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