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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클리프트Janet Clift 6단은 13세에 노던 잉글랜드에서 아이키도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리버풀에서 테리 에즈라Terry Ezra 선생의 지도를 받기 시작합니다.다시 런던에서 카네츠카 미노루 사범에게 2년 간 지도를 받은 후, 아이키카이合気会 본부도장에서 수련하기 위해 도쿄로 이주합니다.영어 강사 아르바이트 이외의 시간은 모두 수련에 투자하면서,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우에시바 기쇼마루 2대 도주, 야마구치 세이고, 아리카와 사다테루, 오사와 키사부로 등 본부 사범의 지도를 받습니다.현재 그리스 아테네에서 아이키도 오브 아테네Aikido of Athens 도장의 지도사범 중 1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편 이몬 데블린Eamonn Devlin 5단 역시 해당 도장의 지도사범입니다. 클리프트 선생은 현재 유럽 전역, 특히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스페인에서 활발히 강습회를 열고 있습니다.본 인터뷰는 지난 제12회 국제합기도대회12th International Aikido Congress 당시 이루어졌으며, 아이키도를 시작한 계기, 과정, 초심자 지도와 도장의 운영 등 폭 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Guillaume Erard: 어떻게 아이키도를 시작했나요?

Janet Clift: 저는 무술에 관심이 많았어요.그리고 제 첫 선생인 테리 에즈라 씨가제가 있던 고교에서 연무를 했어요.그리고 그걸 본 순간그래, 이건 훌륭해.나 이거 할래.'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어린 제가 봐도움직임이나 철학, 이를 풀어놓는 방법이아주 자연스럽고아주 논리적이었어요.어린 제겐 정말 충격이었죠.제 첫 선생은 스티브 파 씨였어요.이걸 진짜 말해둬야 겠는데,그는 체스터 지역에 도장을 운영했는데당시 4급이었어요. 믿기세요?4급. 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4급이었고,만일 3급이면 아주 선배였어요.3단은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Guillaume Erard: 누가 당시 영국의 아이키도를 담당했나요?

Janet Clift: 故 치바 (카즈오) 선생이 떠난 직후였어요.1980년보다 1, 2년 전이었는데,그러니 치바 선생의 존재가 사라지고혼란스러운 시기였죠.카네츠카(미노루) 선생이 기술 고문이었어요.그가 당시 British Aikido Federation의기술고문이 되었지만여전히 치바 선생의 영향력은강하게 남아있었고이 두 가지 영향력이 점점갈리기 시작했죠.저는 카네츠카 선생 쪽에 더 가까웠죠.그가 기술고문이 되었고,당시 기술고문이었고,저는 치바 선생을 잘 몰랐어요.1980년대, 그러니까 1982, 3년치바 선생이 영국에 돌아왔고랭카스터에서 여름합숙을 지도했어요.그때 제가 그를 처음 봤죠.그 다음 저는 미국 샌디에고로 갔어요.16세때였고, 몇 주 동안 그와훈련했어요. 그게제가 치바 선생을 처음 접한 계기였죠.

Guillaume Erard: 치바 선생의 도장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Janet Clift: 5년 정도 수련하고 갑자기그의 도장에 갔으니하나도 이해되지도 않고...제겐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어요.그런 환경이요.저는잉글랜드의 소촌 출신인데갑자기 이 도장에 왔어요.압력 밥솥'이란 별명의 도장에요.치바 선생은 아주 엄했고그는 말하자면 아주 권위가 있었고저는 방문객이었죠.어쩌면 관광이나 다름없었어요.그는 절 잘 대해주셨어요.하지만 저는 그가 아주 무서웠어요.그러니까 그가 품고 있는힘과 에너지가 무서웠어요.그리고 그가 하는 걸 봤죠.학생들, 그의 딸이랑.당시 그녀는 아주 어렸어요.그녀가 수련한 덕에 저는 보호받을 수 있었죠.저는 방문객이었으니까요.

Guillaume Erard: 당시 잉글랜드에서 살았나요?

Janet Clift: 네. 저는 잉글랜드에서 살았고몇 년 후에 이사했어요.런던으로. 거기서 카네츠카 선생과1년 정도 수련하고일본으로 옮겼어요. 일본에 간 게20세 때였죠.

Guillaume Erard: 케네스 코티어 씨를 만난 적이 있나요?

Janet Clift: 네. 그가 제 첫 선생 중 한 분이에요.사실 그는 체스터에 살았어요.로체스터에서 그리 멀지 않죠.매주 금요일 저녁에 와서지도했는데 선생들이 교대하면서지도했어요. 캔은 그 중 한 명이었죠.그가 와서 물론우린 아주 신이 났죠.알다시피 우린 애들이었고이 분은 큰선생과 차를 함께 마셨던 분이고.그는 저희들에게 많은 얘기를 해줬어요.아주 멋졌어요.그는 아주 사랑스러운 분이었죠.제가 일본에 가기 전에 그의 집에 갔을 때일본에서 사는 데 필요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Guillaume Erard: 일본에 가고 싶어진 이유가 뭐였죠?

Janet Clift: 저는 16세 때부터 일본에서 가길 원했어요.본부 도장에 대해서 들었거든요.본부에 대해 많이 알진 못했어요.당시 잉글랜드 사람들은 잘 몰랐어요.하지만 저는 목표로 삼았죠.정말 가고 싶었어요.본부도장에서 수련하고 싶었어요.다나카 씨라는 젊은 일본인이 잉글랜드에 왔는데본부도장 출신이었어요.그가 '꼭 가세요'라고 말했죠.분명 멋진 경험이 될 거라고.당시 영국에시바타 선생이 다녀갔고,야마구치(세이고) 선생도 봤고,당시 요코타(카즈아키) 선생도 다녀갔고.여러 선생들이 잉글랜드에 다녀갔어요.그러니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죠.본부도장 사범들과요.그리고 그때 저는 떠났죠.

Guillaume Erard: 아이키도에 모든 시간을 쏟았나요?

Janet Clift: 네. 저는 아이키도를 하러 갔으니까요.하지만 저는 영어를 가르칠 계획도 있었어요.그렇게 해야 생활비를 벌 수 있었으니까요.하지만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았어요.좋은 일을 찾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그러다 일을 찾았고제 일을 수련에 맞추려고 노력했죠.제 업무 스케줄은 가변적이었어요.그 시간에 일을 할지 수련을 할지.아침에 일하면 오후에 수련하고오후에 일하면 아침에 수련하고그러니까일 하는 시간에 맞춰간 거죠.하지만 아침 수련 대부분은왠만하면 가려고 했어요. 와카 선생(현 3대 도주) 시간이6시 30분이었죠.그리고 저녁이나 오후 클래스도왠만 하면 다 나가려고 했어요.

Guillaume Erard: 특정한 선생과만 수련했나요?

Janet Clift: 아뇨, 전혀요. 저는 모든 분과 함께 하려고 했어요.전혀 차별하지 않았어요.제가 함께하지 못하는 선생은제가 일하는 시간에 수업이 있는 분들이었고지금 보면 아주 슬퍼요.故 아리카와(사다테루) 선생 클래스는 한 번도 못갔어요.일을 하느라요.때로 그게 참 힘들어요.모든 클래스에 참석 못하는게.하지만 최대한 많이 가려고 노력했어요.최대한.

Guillaume Erard: 누가 수련 상대였나요?

Janet Clift: 주로 쿠리바야시(타카노리) 선생,카나자와(타케시) 선생, 호리이(에츠지) 선생..스가와라(시게루) 선생과 고바야시 (유키미츠) 선생은당시 내제자는 아니었지만,이미 지도는 시작한 상태였어요.그래서 그들은 본부도장에 들어갔고,목요일 아침의 故 오사와(키사부로) 선생의수련에 참가했죠.오카모토 요코 선생이 거기 있었고요코와 수련하려고 노력했어요.그녀는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고아이도 있었죠.그리고 당시 외국인 내제자가 2명 있었어요.본부도장에요. 뉴질랜드 출신 야헤 솔로몬과러셀 페르난데즈였죠.그들은 거기서 몇년간 살았어요.

Guillaume Erard: 일본 생활이 힘들었나요?

Janet Clift: 네. 아주 낯설었어요.도장 밖에서 아주 힘들었어요.당시 일본에는외국인이 많지 않았어요.사람들로서는 우리가 아주 이국적이니호기심이 동했겠죠. 게다가 저는 더 튀었어요.아마 어리고어린 외국인 여성이었으니.때로 이게 너무 힘들었어요.지치고, 너무 지치게 만들고이게 끊이질 않으니까요.

Guillaume Erard: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힘들었나요?

Janet Clift: 정말 그랬어요.이건 제 경험이니당시 있었던 다른 여성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미국인 여성들이 많았어요.그 사람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제 입장에서는 제가 힘든 일을좀 겪었다고 봐요.게다가 아주 외로웠어요.제 말은 결국 사람은이런 고독을 겪죠. 도장에 가거나일하러 가거나여러 번 지쳐버리고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걸 느끼고...이게 정말정말외로워죠. 이런 삶이.

Guillaume Erard: 일본에 얼마나 있었죠? 일본에 영주할 생각은 없었나요?

Janet Clift: 저는 3년 반 동안 거기 있었고,막판에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어요.떠나고 싶었지만 제 생각에거기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봐요.거기서 23년 이상 머물면서오래오래 살만한 곳으로 보진 않았어요.그리곤 떠나죠.

Guillaume Erard: 일본에 갔을 때 아이키도 지도자가 되려는 계획이 있었나요?

Janet Clift: 아무 계획이 없었어요.듣기에 아주 멋지고그런 계획을 가져야 했지만그러지 않았죠. 계획을 잡지 않은 건 실수였어요.그리고 지금도 당시가어떤 큰 계획의 일부는 아니었지만거기서 있던 시간은 아주 한정적으로 보였어요.왜냐 하면 저는 미래에 대해 전혀 생각지 않았어요.이력서를 위해 일본에 머문다거나언젠가 아이콘 같은선생이 되겠다거나 하는계획은 전혀 없었죠.일본에 있던 게 멋져보이긴 하겠죠.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수련하고 싶었고, 그게 그날이었고샌디에고에 간 것도.일본 다음에 바로 샌디에고로 갔죠.그것도 그저 매일의아이키도 수련이 멈추길 바라지 않았던 것 뿐이에요.그런데 영국에 돌아가면완전히 멈출 거라는 걸 알았어요.그래서 그냥 샌디에고에 가서아이키도와의 삶을 그냥 유지한 거예요.일본에서의 좋은 친구 야헤 솔로몬이치바 선생에게 가도록 권했어요.저는 이미 그 선생과약간의 친분이 있었죠.그게 제가 한 거예요. 돌아간 거죠.

Guillaume Erard: 샌디에고에서 견습생으로 들어갔나요?

Janet Clift: 안 그랬어요. 거기 참가하지 않았죠.제 생각에, 저는 원치 않았어요.제 아이키도가 이미 상당히정형화된 상태였고저는 이미 자립하고 있었죠.저는 꽤 오랜 시간 수련해왔고,아주 어릴 적부터요, 그리고그건 제가 정말 원하던 게 아니었어요.

Guillaume Erard: 샌디에고 다음에 어디로 갔나요?

Janet Clift: 영국으로 돌아갔어요. 아버지가아주 아프셔서 돌아가셨고, 저는영국으로 돌아와3년 간 머물렀죠. 다른 걸 해보려고시도했어요. 영국에 제가 아주 작은그룹을 갖고 있었는데체스터에요, 이게 재미있었어요.재미있는 경험이었죠. 갑자기아주 빡빡하게 수년 동안 수련하다가또 갑자기덜 빡빡해지고 사람들을가르쳐야 되고. 완전히 진퇴양난이었어요.제가 해온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해석하는데 완전히 가로막혀 버렸죠.

Guillaume Erard: 수련에서 지도로 전환하는 건 어땠나요?

Janet Clift: 매일의 수련을 중단하고도장을 열려고 하면현실은 아주 비관적이죠.아주 실망스러울 수 있어요.비관적이고.처음에 학생이 들어왔는데당신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아요.이게 당신이 처음 겪는 현실이죠.만일 학생이 당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저 문을 지나입문한다고 믿는다 쳐요.당신은 매일 3~4시간 수련했잖아요.저는 많은 선생들이초심자를 가르치는데 신물이 난 걸 알아요.그들은 그저 유단자를 가르치거나그저 호흡던지기를 가르치고 싶어하죠.하지만 물론 당신이 가르치는 대부분은어떻게 수신(낙법)을 할지어떻게 일어날지, 어떻게 돌지 따위죠.이게 90%예요. 발을 어디 둘지손을 어디 둘지.이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가르치는 게즐겁지 않을 거예요.전 이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라고 봐요.자기 도장을 갖고자기 학생들을 만드는 건당신을 또다른 아이키도가로 만들어요.이게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제가 치바 선생에게 개인적으로 얻은 건도장을 어떻게 운영할지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가그의 가르침에 큰 부분을 차지했고, 그는아이키도가로서 제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가르침을 주는데 능숙했어요.

Guillaume Erard: 치바 선생 외에 당신의 지도법에 영향을 준 선생이 있나요?

Janet Clift: 그때그때 달라요.제가 함께 수련한 여러 선생들의서로 다른 면을 참고하죠.초심자를 가르치는 거요.아주 자주 저는 반추해봐요.초심자로서 뭘 배웠고어떤 얘기를 들었는지.그래서 제 첫 아이키도 선생들이가장 큰 영향을 준 거죠. 그리고제가 좀더 수준이 높은 사람들과훈련하면, 저는 제가 좀 더 나아졌을 때저를 가르쳐준 선생을반추하죠. 아이키도에 있어조금이라도 깊은 느낌을주려고 노력하고, 그리고제가 함께 하던또다른 선생과 연결시켜 보기도 하죠.지금 이 순간 뭘 하는지에 따라 달라요.

Guillaume Erard: 아이키도 지도자로서 생활을 영휘하는 게 얼마나 쉬운가요?

Janet Clift: 제게는, 물론 제 상황은 약간달라요. 저는 결혼했고,그는 직업이 있어요. 제 말은 이런 것들로모든 게 아주 달라져요.하지만 아마도 아이키도로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에게 물어본다면제 생각에 아주 불안정한 생활에그렇게 되기가 좋지 않을 거예요.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누가 실제로 완전히전업으로 할 수 있는지.제 생각에 아주 유연하고아주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봐요.기대를 많이 내려놓아야 해요.아마도 포괄적이어야 할 수도 있겠죠.당신이 하는 일에요.강경 노선을 취하기란 아주 어려워요.선생으로서는.

Guillaume Erard: 당신의 기준을 낮춰야 하나요?

Janet Clift: 음...어쩌면 기준을 낮출 수도 있겠죠.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기술의 기준을 낮추는 거요. 하지만받아들일 필요는 있을 지도요.도장에 오는 사람들이당신이 원하는 만큼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과체중일 수도 있고,너무 나이가 많을 수도 있어요.아이키도에 젊은 사람들은 그리 많이 오지 않으니까.그런 면에서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게기준을 맞춰야 할 수도 있어요.기준을 낮추기 보다는요.

Guillaume Erard: 아이키도 수련자들의 고령화가 심화되는 이유는 뭘까요?

Janet Clift: 여러 이유가 섞여서라고 보는데선생이 나이가 들면서젊은이들을 끌어들이지 않으려해요.그리고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자신의 힘을다른 사람에게 물려줘야 해요.저는 젊은이에게가르치도록 해요.도장에서요.그리스에서젊은이가 도장에서 가르치는 게젊은이를 끌어들이죠.제 말은 그들은 저 같은 50세 먹은여성이 자기를 가르치길 그리 원치 않아요.제 말은 이게 팩트라는 거죠.네 이건 좀 좀...문제가 있지만, 제 생각에 사람들은이런 종류의 환상에 천착하려는 것 같아요.언젠가 자기가 선생이 될 거고,영원히 선생으로 남으리라고.이건 아이키도계에 아주 해로워요.그들은 뭔가를 놓기를두려워해요.

Guillaume Erard: 이런 경향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Janet Clift: 지도하는데 있어유연성을 갖거나젊은이들은 좀 더지도과정에 끌어들어야 해요.또한 그들이 아이키도의 미래라는 걸독려하고 힘을 주어야 해요.제 생각에 아주 정체된 상태인데항상 같은 사람이 같은 걸되풀이해서 말하죠.저는 이게 아주 석회화되고있다고 봐요. 하지만 물론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죠.일본의 전통적 요소는아주 수직적이지만 이게활력을 주는데는 큰 도움이 안 되요.

Guillaume Erard: 초심자들의 말에 좀 더 귀기울여야한다는 건가요?

Janet Clift: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사람들, 흰띠들.아이키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아이키도가 어떻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기준으로서. 흰띠들은 아주 중요해요.우리는 항상 유단자들에게 집중하죠.아니면 선생에게. 하지만 흰띠가 없으면우리도 없어요.이건 팩트예요. 그리고 우리가 계속이들은 무시하면 20년 내로지도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예요.제 말은 우리는 그때 여력이 안 될 거고뭐 당신은 젊으니까 괜찮을지도요.OK, 저도 20년 뒤에 있을지도 모르죠.하지만 초심자들이나흰띠들을 계속 무시한다면...제 생각에 이건 대단히 큰 실수고,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정말 그럴 거예요.

Guillaume Erard: 초심자들을 도와 전반적인 수준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Janet Clift: 많은 강좌들이좀 더 하급자들에게 초점을 맞춰야겠죠.자세, 몸놀림이라든지 그런 간단한 거.우리는 종종 시야가 좁아져사람들을 주변에 모아멋져보이려고만 하죠.하지만 그러다가 정말 중요한것들을 놓치고, 사람들이 뭔가 배우고싶어하는 열망마저 잊어요.제 도장에서도 그런 걸 느끼죠.사람들이 어딘가서부터시작해야만 하는 걸 느끼고그들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껴야 해요.그들이 토대예요. 단단한 토대.아주 중요해요.아마도 이게 우리가 봐야하는 부분이겠죠.기초 강좌가 있는지사람들을 위한 기본 강좌가 있는지.왜냐 하면수련과 발전 부분을 놓쳐서는그걸 되찾을 수 없어요.방금 기술을 배웠고 그건 아직덜여문 기술이죠. 그런데아무런 기본 토대가 없다면 어떻겠어요?

Guillaume Erard: 왜 여성 지도자가 많지 않은 걸까요?

Janet Clift: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죠. 아이키도에서는.이건 팩트예요.이유는 잘 모르겠어요.아마 남자들이 조금 더여성보다 지도하려는 야망이 커서일지도.권위에 대해 여성보다 더 강한 욕구를 갖고 있죠.제 생각에 여성은 권위적인 지위를갖는 게 부자연스러워요.본성이 아니죠. 제 말은모든 여성의 본성은 아니지만일반화하자면 그렇다는 거죠.제게는 명확하지 않아요. 그저 짐작하는 거죠.남자가 여자보다 많은 비율을차지하는 거요.어쩌면 자기 확신이 부족한 게큰 원인일수도 있어요.남성만큼 육체적으로강하지 않다거나...물론 작은 남자나큰 여자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여성은 육체적으로 강하지 않죠.아마도 그게 이유가 아닐까...자신감이 덜하고 자기가 선생이 되거나어떤 권위를 가지진 못할 거라 느끼죠.미국을 보죠.제가 미국에 있을 때 여성 선배들이많았어요. 아주 좋은 선생이고아주 자신감에 넘치고 가르치기도 잘 했죠.그래서 나라에 따라 다른 건지도요.

Guillaume Erard: 국가가 큰 영향을 미치나요?

Janet Clift: 저는 문화 요소가 아주 크다고 봐요.네미국에서 여성은 아마도더 동등하고 더 잘 받아들여지고스스로에 대한 기대가아주 다르죠.분명 미국은 훨씬 성평등이더 잘 갖춰졌어요. 아마도야마다(요시미츠) 선생과, 물론 치바 선생 역시.(치바 선생이) 살아계실 때여성들을 아주 많이 승단시켰어요.여성이 지도하는데 거부감이 없죠.

Guillaume Erard: 여성을 격려하는 게 아이키도계에 더 깊은 이슈라고 생각하시나요?

Janet Clift: 많은 다른 시각이 있죠.매트 위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일어나는 일이요. 그리 간단하다고 보진 않아요.여성이 격려를 못받는데남성이 격려를 받는다는 식으로 간단한 게 아니죠.여러가지 요소가 있어요.쉽게 답이 나오지 않죠.많은 이슈가 있는데개인적으로는크게 영향을 받은 바가 없어요.그런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죠.하지만 모르고 지나쳤을지도.저는 진심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2배는실력이 좋아야 겨우 같은 수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봐요.정말 그렇죠.여성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아주 예외적인 일이에요.많은 남자들을 봐왔는데그리 실력이 좋지 않은데도지도하고 있더군요. 그들은 힘이 세니까.그들은 사람을 던질 수 있으니그게 최저선이 되는 거죠.그런데 최저선이 잘못 그어진 거죠.남자들은 여자가 상대일 때 교정해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보입니다만...'아마도 그게 제가 다른 여자들로부터가장 많이 듣는 불평일 거예요.남자들이 계속 자기를교정하려 한다는 거요.그 남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와관계 없이 그저 계속 교정하려 들어요.여자가 남자만큼 훌륭하지 않다는생각일 텐데,저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남자라 그러는지정말 정말신기해요.제 입장에서는 성별 이슈가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있어요.네, 네. 왜냐 하면저는 이런 불평을 여자들에게서많이 들었어요. 어디서나요.여성에게 이런 일은,이런 공격성이나 제한이나여자에게 뭘 할지 지시한다거나.이건 어디에나 똑같아요.하지만 이게 매트 위에서까지반복되면 이건 육체적인 거고그리 즐겁지 않죠.전혀 즐겁지 않아요.아주 화나게 만들죠.

Guillaume Erard: 이런 문제에 대해 지도자의 주의를 고양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Janet Clift: 이게 어떻게 해야 바뀔지잘 모르겠어요. 정말.어떻게 이 이슈를 표면화시키고드러내야 할지.저는 지도자로서,여성 지도자로서 정말 격앙되게 하는 것은상대가 여자라고 수신(낙법)을 하지 않는 남자예요.그 남자는 기술적으로 여자보다훨씬 떨어질 수 있는데도수신을 하지 않아요.이런 일을 자주 봤어요.저에게는 이런 일이정말 화가 나고너무 화가 나요. 이런 걸 보면.도장에 일정 비율의 여성이 필요한가요?제 생각에 건강한 도장의 징표는여성이 많은 곳이에요.남자만 있다면...저는 항상 누가 도장에 가려 하면항상 거기에여성이 많은지 확인하라고 해요.만일 그렇지 않다면그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신호예요.분명히 그래요.

Guillaume Erard: 당신의 도장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제기하나요?

Janet Clift: 제가 항상 하는 것은분명 제 도장만이 아니라다른 많은 도장도 그럴 건데저는 항상 수신에 집중해요.초심자가 오면 항상기술보다는 수신에 신경을 쓰죠.그러면서 그들이상대의 움직임을그 움직임이 좋든 나쁘든받아내면서 떨어지는 걸 이해하게 만들죠.그들이 해야하는 건 떨어지는 거라는 걸.그걸 강조하면 동력이 바껴요.정말 바뀌죠.스스로 넘어져보도록 해요.제가 넘어지게 하지 않아요.자기 혼자 수신 연습을 하는 거죠.그게 이해도를 높인다고 생각해요.던져질 때까지일부러 기다리지 않고혼자 연습해보는 거예요.

Guillaume Erard: 학생들에게 기술 외에 강조하는 게 있나요?

Janet Clift: 의도하는 건 아니지만사람들이 뭔가 다른 걸 느끼는 것 같아요.잘 모르겠어요. 그럴지도 아닐지도.아주 어려워요.내가 뭘 전달하는지 판별하기가.가르칠 때요.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저는 너무 심오하거나그 비슷한 것도 얘기하지 않아요.때로 내적인 확장이나중심부터 움직이는 것을 애기하지만정신이라든지명상이라든지 이런 건 얘기하지 않아요.

Guillaume Erard: 좋은 기술 외에 아이키도가가 가질 덕목은 뭘까요?

Janet Clift: 지도자로서 항상주변 사람들이잘 행동하는지 봐야죠.아이키도만잘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아이키도를 책임감 있게 배려하면서 하는지.상대방을 배려하고그저 기술만 깔끔한 게 아니라좋은 품성을보여주는지요.이게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이런 게 함께하는 게 자주 있지는 않죠.그게 항상 그렇진 않아요.아주 좋은 아이키도를 하는 게꼭 훌륭한 품성과 연결되는 건아니죠.

Guillaume Erard: 심사 중에 어떻게 사람의 품성을 판별하나요?

Janet Clift: 아주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정신이 딴 데있으면 육체적으로도 드러나요.그래서 이 둘을 나누기란아주 어렵죠.

Guillaume Erard: 아이키도 수련이 사람을 더 좋게 만든다고 생각하나요?

Janet Clift: 아... 아주 힘드네요.아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가능하긴 하지만그냥 수련하기만 한다고그게 갑자기정직해지거나상대를 존중하게 만들어서, 당신을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죠.아이키도를 한다고 그렇게 된다. 아뇨.당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아요.그건 그냥 꿈이죠.

Guillaume Erard: '현재 그리스에서 거주하며 지도하는데요. 계기가 뭐였나요?

Janet Clift: 16세때부터 제 남편을알았어요. 더블린의 아이키도 그룹과함께 BAF에 자주 와서그를 거기서 알게 되고,1995년에 다시 미국에서 만났죠.미국에 몇 주 갔는데,그는 거기서6개월 간 머물 예정이었죠.그가 저를 그리스에 초청해서강습회에서 지도하게 했어요.그런 연유로제가 그리스에 왔죠.그는 이미 그리스에 도장과 그룹을 갖고 있었고제가 오고부터는 함께운영하고 있어요.

Guillaume Erard: 그리스 아이키도의 수준은?

Janet Clift: 처음에는 아주 작은 활동이었다가6, 7년 전부터 갑자기싹이 트더니 지금은수십 개의 도장이 있어요.우리는 서로 협력하려고노력하고 있고 이러한 잠재력을IAF(국제합기도연맹) 가맹에경주하고 있죠. 우리는 함께 일하면서이 목표를 이루려 해요.모두 같은 배를 타고다양한 세미나가그리스에서 열리고. 우리는 최대한 많이지원하려고 노력하고요.스가와라(시게루) 선생이나 고바야시(유키미츠) 선생이 다녀갔고,본부도자엥서요. 이게 그리스 내의본부도장에 가맹된 모든 도장들이연합해서 이룬 세미나인데그렇게 해서 선생들을 초청한 거죠.

Guillaume Erard: 이번에 지도자로서 일본에 돌아온 감회는?

Janet Clift: 똑같아요.저는 언제나 본부도장 출신이니,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전혀 다를 게 없죠.저야 항상 스가와라 선생을 상대로수신을 잘 할 수 있을까,고바야시 선생을 상대로 수신을 잘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이게 제가 가장 먼저생각하는 거예요

한국어 번역, 자막 : 성주환 AikidoK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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