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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티시에 사범은 非일본인 최초로 8단으로 승단한 인물입니다. 또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 나아가 전 세계 아이키도 커뮤니티에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본 인터뷰에서는 18세 소년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티시에 선생 본인이 직접 담담히 얘기합니다.

기욤 이라드 : 어떻게 아이키도를 시작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저는 프랑스 파리에서 아이키도를 시작했습니다.선생은 장 클로드 타베르니에라는 분이었죠.모치즈키 선생(요세이칸) 스타일이었어요.모치즈키 미노루의 아들, 히로오 씨에게 배운 분이었죠.약 1년 정도 했어요.그 다음에 나카조노 선생을 만났는데,마르세이유에서 오셨죠.그의 아이키도는 완전히 달라서 놀랐어요.진짜 아이키도였죠.2단이 될 때까지 나카조노 선생에게 배웠어요.18세가 되어 일본에 가기로 결심했어요.아이키도 실력을 늘리려고요.몇 달 정도만 있을 계획이었죠제 생각엔 당시 6개월간 일본에서 아이키도를 하거나,아니면 그냥 일본땅을 밟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식이었어요.하지만 상황이 좀 다르게 흘렀어요.

기욤 이라드 :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크리스찬 티시에 : 거기 가본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일본식 리듬에 휙 하고 빨려들어가,거기서 사는 게 편해져요.지금은 다르지만, 일본은 당시엔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웠고,책임질 일도 별로 없는 젊은이로서는인간관계도 꽤 단순할수 밖에 없어요.배우기를 갈망하면, 거기가 금방 편해져요.

christian tissier bokken파리와 비교하면 도쿄는 큰 시골마을 같았어요.길은 좁고, 집은 작고, 고층빌딩은 없고...아이키카이 주변에는 높은 빌딩이 아이키카이 건물 뿐이었어요.여전히 시골이란 느낌이었죠.저는 그 리듬, 수련이 좋았어요.그리고 사람들과 접하기도 쉬웠죠.

기욤 이라드 : 어떤 선생과 함께 수련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도착 당시,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사긴에 참가했어요.달리 할 것도 없었으니까요.당시 재미있었던 게, 사이토 선생은 일요일 아침에 지도하고,도헤이 고이치 선생과도헤이 아키라 선생은 차례로 미국에 갔고....선호하는 선생은 있었지만, 설령 이해안되는 선생도 가리지 않고 모든 시간에 참가했어요.도주의 아이키도는 이해가 안 되었어요.내가 배웠던 것과는 아주 달랐죠.그의 실력을 의심하기도 했어요.내가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내가 배운 것과는 다르게 보이니 제겐 좋게 보이지 않았죠.

기욤 이라드 : 본부도장에 도착했을 때 선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사람들이 특히 도주가 내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게 재미있었어요.야마구치 선생은 나카조노 선생에게 편지를 받아 미리 알고 있있고,당시 외국인은 별로 없었으니 도주는 저 18살짜리 외국애는 누굴까멀리서 지켜본 거죠.그는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어느날 제게 와서 말을 걸었습니다.당시 저는 일본어를 못해서 대화가 그리 쉽지는 않았어요.하지만 조금씩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나는 현 도주와 동갑인데, 당시 그는 흰띠에 하카마는 입지 않았어요.그래서 자주 같이 수련했습니다.차츰 그는 저를 우케로 호명했고, 그는 제 선생들 중 한 분이 되었습니다.저는 수년간 매일 아침 그의 시간에 출석했어요.또 저는 주로 야마구치 선생을 따라다녔는데,본부도장과 시모키타사와의 개인 도장,그리고 목요일의 메이지 수련 모두 갔어요.부자 관계와 비슷했어요.그의 날개 아래 저를 품어주셨죠.또 가까웠던 선생은 사오토메 선생과마스다 선생. 자주 같이 다녔어요.

기욤 이라드 : christian tissier hombu dojo그분들은 당시 이미 정규적으로 지도를 하고 있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당시 엔도 선생은 스가누마 선생과 같이막 4단이 되어서 아이키카이에서 초심자 상대로 지도를 했습니다.사오토메 선생은 이미 6단에 수요일 오후 3시간 동안 지도했습니다.와타나베 선생을 포함한 모두와 수련하다 보니,사람들은 저를 익숙해하고, 저는 도장의 일원이 되었죠.

기욤 이라드 : 선생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진 않았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솔직히, 저는 그런 문제를 겪은 적이 없어요.저는 한 번도 야마구치 선생을 흉내내려 하지 않았어요.최소한 그의 극단적인 폼은요.그의 자세는 순수하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녜요. 그런데 그의 제자들 중에 그런 사람이 보이죠.야스노 선생 말고 외국인을 포함 몇몇은자세만 흉내내는 사람도 있어요.우리는 자주 가장 쉬운 부분을 흉내냅니다.선생이 머리를 만지면 따라 만지고,선생이 건성으로 손쉽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걸 카피하고선생이 상대와 노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게 아니거든요.그는 자주 '헛점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어요.그는 제가 저만의 아이키도를 하고 있어서 좋아했어요.물론 그가 가르칠 땐 그가 하는 그대로 하려 노력했죠.그게 제가 하고 싶어한 거니까요.하지만 오사와 선생의 시간에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지만 그걸 따라하려고 노력했어요.그러니 저는 어떤 스타일에 고정되는 문제를 겪은 적이 없어요.외부인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는 것 같지만,선생들 모두가 절 우케로 썼어요. 타다 선생도 1974,5년에 일본에 돌아왔을 때 저를 쎴죠.그는 화요일에 지도했고 절 우케로 자주 썼어요. 서로 완전히 스타일이 달랐는데도요.기본적인 형태를 공유하는 건 아이키도에서 중요합니다.그게 도주의 클래스가 중요한 이유죠.획일화된 기준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것.초심자가 공감대를 갖기 원한다면,정면타에서 공격선을 벗어낫다가 다시 회복하는 걸 설명하면 좋죠.1교, 2교, 3교, 4교.그 다음에 사람에 따라 변화를 주고요.누구는 일직선으로, 아니면 누구는 엔도 선생처럼 손을 살짝 빼는 식으로.하지만 기본과 공감대가 없으면, 모든 게 어려워져요.새로운 선생을 만나면, 전체상을 그려야 해요.이미 알던 걸 버리고, 새롭게 발견한 것에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아이키카이에서는, 모두가 같은 토대를 공유하죠.

기욤 이라드 : 일본에 갔을 때 이미 그런 기본을 갖추고 계셨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아니, 제가 일본에 갔을 땐,2교 오모테와 우라의 차이가 뭔지도 몰랐어요.우리는 2교를 항상 이런 식으로 했죠. 수신의 수준이 높지 않았으니까요.일본인 선생이 아이키도를 지도하러 왔을 때,손을 바꾼다거나 하는 수신의 요령을 모르니 그들은 응용기를 보여줘야만 했어요.그들로서는 2교는 이렇게, "아얏, 아파", 3교는...하는 식으로 보여주는 게 더 쉬웠죠.당시에는 오모테/우라의 구분이 크지 않았어요.저는 일본에 가서야 도주가 정립한 체계를 알게 되었어요.그 체계화는 대단한 업적이엇어요.당시 프랑스에서는 아이키도를 응용기 위주로 했어요.

기욤 이라드 : 유럽인들이 실전 응용에 더 흥미를 가졌기 때문인가요?

christian tissier seigo yamaguchi 03크리스찬 티시에 : 아뇨,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죠.저는 전세계를 돌아다닙니다.만일 호흡던지기만 하는 도장을 본다면, 그건 선생이 좋지 않다는 뜻이에요.왜냐하면 던지고 낙법하는 건 쉽거든요.만일 어깨잡기 1교, 2교, 3교, 4교를 정확한 손놀림과 함께 가르치려 한다면,그건 순수한 기술의 문제고 배우는데 시간이 걸려요. 또한 이치가 있어요.그래서 선생들은 이 이치를 알 필요가 있는데 그러질 않는 거예요.사실 지금도 그래요.만일 누구에게 "왜 이런 식으로 하지?"라 물으면 "그냥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답을 듣겠죠.

기욤 이라드 :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몇몇은. 그리고 야마구치 선생이 했죠.질문을 하면 언제든 답을 줘요.그가 하기 싫어한 게 몇가지 있었어요.그는 반신반립기 한손잡기 기술을 보이지 않으려 했어요.2교 우라만 그랬나, 그의 기준에는 제대로 된 잡기가 아니었죠.반신반립기에서 사방던지기와 외회전던지기를 제외하고는,정면타 입신던지기는 절대 보이려하지 않았어요.그로서는 무의미했으니까요.어쩌면 승단 시험 중에 물어봤을 수도 있지만,8,9단이 되고서는 그 자신은 그걸 하지 않으려 했죠.저도 똑같이 지금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어요.저는 더 이상 검잡기를 지도하고 싶지 않아요. 좀 말이 안 되거든요.저는 타무도의 경험도 있고, 검술도 합니다.교육적 차원에서 몇가지 형을 보이는 건 괜찮지만, 그걸 믿지는 않아요.단도도 똑같아요.물론 승단 요건이니 제 지도원들이 이걸 가르치는 건 중요하죠.무기처리술은 단도로부터 몸을 지키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뭐가 우선인지 강조하기 위한 겁니다.단도가 있으면, 그게 나무라도, 기술적인 우선순위가 바뀝니다.칼이 없으면 사방던지기를 할 때 손을 내 몸에 가까이 붙이는 게 더 낫죠.하지만 칼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되죠. 우선순위가 바뀌는 겁니다.움직임의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조미료"의 역할은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없어요.호신술로서는 기능하지 못합니다.3~6단의 선생들이 그걸 보이는 건 좋은 일이지만,제가 가르치고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제가 줄 수 있는 메시지와 비교하면제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이 없더라도,만일 사람들이 제가 하는 것에 흥미가 있으면그들에게 내가 더이상 믿지 않는 것보다는 지금 관심을 두는 걸 보여주는 게 낫다고 봐요.기욤: 세미나만으로는 사람들이 필요한만큼 당신과 접촉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그렇죠. 복합적이에요.아이키도인의 인생에는 단계가 있어요.당신 역시 아이키도인이죠. 저보다 젊고, 어떤 점에서는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을 겁니다.저는 그게 복싱이었고, 사오토메 선생이랑 시작했죠.둘 다 보호대를 찼지만, 제가 펀칭볼 역할이었어요.그런 경험을 한 다음에는, 정리를 해야 해요.아이키도의 문제는 그게 아주 광범위하면서도 마지막에는 하나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아이키도에서는 무슨 기술을 하든지, 항상 같은 느낌으로 같은 동작을 해야 합니다.기술은 부채와 같아요. 펼쳐서 모든 형태를 익혀야 하죠.검술이나 가라데 카타와도 비슷한데모든 상황을 상정하여 익히고...언젠가 한 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아마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에 대비한 기술 모두를...당신은 다 배우는 거죠.하지만 거기엔 단 하나의 토대만 존재합니다.그리고 얼마 지나 당신이 부채를 접으면 단 하나의 기술만이 남게 되는 거죠.처음에 횡면타 1교를 연습한다고 하면,처음에는 옆으로 빠졌다가 다시 원위치하도록 가르치므로 거의 움직임이 없을 겁니다.이후, 두 손이 붙으면서 파트너를 리드하는 움직임을 더하게 되죠.다음으로, 응용기로 넘어가면, 그 속의 포인트를 찾게 됩니다.그러면 같은 방식으로 1교도 하게 되요.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이 올바르다면, 횡면타든 정면타든 똑같은 동작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죠.왜냐 하면 중요한 건 손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이치니까요.그리고 당신이 이미 그것을 얻었다는 약간의 희망.오직 단 하나를 얻기 위해 그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예를 들면, 바로 지금 저는 양손잡기 호흡법에 매진하고 있어요.이걸 더 쉽게 하는 법을 이해하는데 50년이 걸렸죠.그 이유는 원리가 같으니까. 자연법칙은 너무나도 단순하니까요.

기욤 이라드 : 기술은 단지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인가요?

크리스찬 티시에 : 정확한 지적이지만, 또다른 면도 있어요.사람들은 아이키도를 몇년, 10년, 그 이상 수련합니다.각자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으니까 하고 있어요.그런데 사실은 그들은 종종 잘못 인도되기도 합니다.진짜 이유는 나중에서야 스스로를 드러내거든요.나중에서야 당신이 뭔가 하고 있긴 한데, 그게 처음에 느꼈거나 하고자 했던 것과는 꽤 동떨어졌다는 걸 깨닫게 되요.최소한 제 경우는 그렇습니다.

기욤 이라드 : 기욤: 당신의 목표도 바뀌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예, 이제서야 내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그 문이 커지면, 당신은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죠.그 문이 작아지면, 당신은 제대로 된 뭔가를 하고 있으니 그걸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하죠.서로 관점이 다른 거죠.수련이란 그런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곧 지루해져요.만일 누가 4,5단에 기술 레벨도 훌륭하고(1교, 2교, 3교, 4교, 5교), 부상도 없는데,30년 후에도 똑같은 걸 하고 있다면, 그건 그가 수련에서 뭔가 놓치고 있는 겁니다.항상 자기 하던대로 할 수 있고, 같은 기술을 반복하면서 여전히 정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만일 누가 저보고 아이키카이의 내제자들이 하는 것처럼 기본기를 해보라고 하면,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건 제가 40년 전에 하던 거죠. 이제는 다른 감각이 작용하고 있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기도 하죠.예를 들면, 저는 요즘 골프를 칩니다.잘하지는 않지만, 아이키도와 많은 공통점을 발견해요.때로, 요령을 쓰면, 공을 더 멀리 보낼 수 있죠.하지만 선생은 제게 "아니, 잘못된 동작입니다"라고 말하죠.손을 그렇게 하는 건 몇 달 정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결국 당신의 성장을 방해할 겁니다라고.원칙을 벗어나기 때문이죠.기욤: 누구나 극복해야 할 실수들이 아닐까...물론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사실에 정직해질 필요가 있어요.아이키도인 누구나 힘으로 자신의 미흡한 동작을 커버하려는 유혹이 들죠.하지만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그걸 알죠.속임수를 쓰면 스스로 알아요.진짜 문제는 자기가 속이고 있다는 걸 자신도 모를 때죠.

기욤 이라드 : 당신의 무기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야마구치 선생의 아이키도는 매우 샤프했어요.그의 움직임과 손놀림은 베기에 기초한 거죠.아주 날카로웠어요.그는 다양한 유파의 무기술을 연구했습니다.무기술을 가르치진 않았지만, 아주 관심이 많았어요.아이키카이에는 무기술 시간이 없었어요. 큰선생이 금지했죠.그래서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무기술을 수련하게 되었죠.당시 우리는 가토리신토류, 무소신덴류,각종 거합 유파 정도만 겨우 알았는데,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시마신류를 사람들이 익히기 시작했어요.어느날 밤에 저는 야마구치 선생댁에서 가시마신류를 접하게 되었죠.선생이 제게 이나바(미노루) 선생의 영상을 보여줬어요.당시는 아직 선생이 아니라 이나바 '군'이었죠.그의 연무를 보니 꽤 흥미롭더라구요.그래서 선생이 그를 제게 소개시켜 주셨습니다.이나바는 야마구치 선생에게 아이키도를 배우고 있었거든요.선생의 소개를 받은 이나바는 저보고 배우겠는지 물었어요.하지만 이나바는 아직 학생이라 지도하지는 않았어요.구니이(젠야) 선생에게 아주 조금 배웠죠.

기욤 이라드 : 기욤: 그를 만난 당시 이나바는 아직 가시마신류의 멤버였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네, 하지만 구니이 선생이 당시에도 생존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네요.오랜 후에 그는 저보고 그가 저를 가르친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그는 소위 연습상대를 해주면서 저를 가르친 거죠.기욤: 비공식적이라는...비공식적이었죠. 4명이었어요.주중에 3번,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 4,5시간.때로는 가사베기만 4시간 동안 쉬지않고 하기도 했죠.그 다음에 그가 기술을 받아줬어요.저는 그저 어린애였으니 그가 제 선생이나 같았지만, 나이차가 크진 않았어요.몇년 전에 만났더니 "우린 그냥 같이 운동한 것 뿐이야."라고 하더군요.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저를 가르친 거예요.저는 가시마신류에서 제 성격에 맞는 걸 찾아 익혔죠. 뚫고 들어가는 거요.제가 아이키도인들이 익히는 몇몇 다른 검술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물러나는 겁니다.예를 들어, 베고 있는데 몸은 뒤로 빠지는 거요.저는 우선 벤 다음에 뒤로 빠지는 걸 선호합니다.상관 없어요. 그건 그냥 카타니까.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한다면 그건 괜찮아요.제 생각에는, 가시마신류에서 상대의 공격 바로 아래로 파고드는직접적인 방식이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나중에 킥복싱에서도 이런 걸 발견하기도 했어요.그런 거죠. 상대가 움직였는데, 나는 이미 거기 있는 거.아이키도의 입신과도 상통하죠.움직일 필요는 전혀 없는데 뭔가가 이미 시작되는 거.저는 가시마의 눈부시게 빠른 스피드가 좋았어요.그래서 카타를 익혔죠.저는 거합과 검도도 약간 했어요.

기욤 이라드 : 기욤: 가시마신류의 검술 부분만 하셨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아뇨, 창과 장도 아주 조금 했어요.약간의 창 아와세, 장 대 검, 발도술.발도술은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안 합니다.팔꿈치 수술 이후로는요. 팔이 완전히 펴지지 않게 된 이후로는 그때까지의 몸놀림을 모두 다시 정립해야 했어요.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더 이상 흥미가 없어요.

기욤 이라드 : 기욤: 가시마신류의 체술도 익히셨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당시에 이나바 선생은 가르치지 않았어요.하지만 때때로 이나바 선생이 없으면 저는 다나카 선생 시간에 가곤 했죠.요신칸에서 전향한 다나카 선생말이죠.그의 체술은 아주 달라서 저는 그것도 했어요.기욤: 하지만 가시마신류의 기법은 아니었다...그렇죠. 약간 다른 아이키도지만 여전히 아이키도였어요.이나바 선생의 아이키도는 아주 이완되어 흐르는 듯 하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죠.다른 분야예요.

기욤 이라드 : 가시마신류 같은 고류가 현대무도인 아이키도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이 점을 명확히 해야겠군요.제가 지도하는 아이키켄은 가시마신류가 아닙니다.저는 그걸 가르칠 자격이 없어요.제가 일본에서 막 돌아왔을 때는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소문으로는, 이나바 선생 역시 더이상 가시마신류의 멤버가 아니라던데요.저는 오래전에 제 아이키도에 필요한 검술 카타만 남기자고 결심했어요.아무리 아주 흥미로운 카타들이 달리 있어도, 제 아이키도에 도움이 안 되요.한번은, 가시마신류 종가의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예를 들면 '멘 타치 즈케'에서 그들은 코등이에 아주 가까운 위치로 막죠, 아마 더 강하기 때문일 거에요.하지만, 그건 제 흥미를 끌지 못했죠. 제가 1교를 하는 방식이 아니거든요.저는 같은 기술을 검끝에 가까운 부분으로 하는 걸 선호합니다.저는 그 유파를 전승하지 않아요.저는 단지 기본을 공유하고 제 아이키도에 적합한 형태만 간수하고 있는 겁니다.그러니까 양발끝을 벌리는 건 아이키도의 특징적인 자세죠.(가시마를 따라하는 건 아닙니다.)저는 일주일에 한 번만 검술을 가르칩니다.하지만 오전 11시라서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직장이나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까. 그래서 수준이 그리 높지 않죠.저는 검과 장을 장기 강습회에서 가르칩니다.1주일 짜리 강습회라면 매일 1시간씩.사람들이 편안해하고, 좋아하죠. 아이키도만 하는 것보다 덜 피곤하고.장은 사오토메 선생이랑 많이 했어요.제게 모든 걸 가르쳐줬어요.제가 이나바 선생에게 배운 장 카타는 검 카타와 완전히 같지만 장으로 하는 겁니다.사오토메 선생과 사이토 선생의 장 카타에서는 팔방돌리기(핫소가에시)가 많은 게 흥미롭죠.몸 전체를 써야하고 재미도 있으니 사람들이 좋아해요.하지만 저는 절대 무기의 고수가 아닙니다.

기욤 이라드 : 당신의 레벨에서는,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바꿔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저는 64세입니다.저는 더 많은 사람들을 제가 젊을 때보다 더 존중합니다.나름 많은 이해심과 관용이 쌓였기 때문이죠.저는 뭘 뺏거나 훔칠 마음이 없어요.만일 제가 제 아이키도에서 뭔가 새로운 거나 다른 원리를 소개하였다면, 전 그걸 다른 이름으로 불렀겠죠.아니면 새로 유파를 만들거나. 하지만 그건 제가 하고픈 게 아닙니다.사람들은 '티시에 스타일'이라 부르지만, 저는 스타일이 없어요.제 스타일은 아이키카이죠.제 아이키도는 야스노, 미야모토, 가나자와, 엔도의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기욤 이라드 : 이해가 되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굳이 말하자면 티시에 계열이란 건 있겠죠.비란카이 등 다른 계열처럼요.제 아이키도는 아이키카이의 아이키도입니다.그냥 제 나름의 형식일 뿐이에요.제가 지금껏 배운 걸 배신하고 있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그랬다면 누가 지적했겠죠.물론 몇 사람은 약간은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후지타 선생은 저와 아주 친했는데도 절더러 '쇼맨'이라고 말하곤 했어요.그건 아마 제가 베르씨 무술축제에 나갔기 때문이겠지만, 누군가는 해야했고 제가 아니라도 다른 누가 나갔겠죠.전 베르씨를 즐기지 않아요. 4,5년 전부터는 아예 안 나갔죠.브루노 등 제자들을 보내죠. 저는 더이상 관심이 없거든요.제가 하고픈 일이 아니에요.제가 하고픈 건 컴뱃게임즈에서 했던 것의 연장선이죠.저는 병에서 회복중이어서 천천히 연무했더니 이걸 또 비판하더군요.중간에 멈춘다고.저는 단계별로 보이려 한 건데 그걸 또 문제삼아요.또 한편에서는 아이키카이의 이토는 저를 부르더니 훌륭했다더군요.하지만 물론, 베르씨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지루하겠죠. 거기는 크라브마가나 극진이 있으니까요.하지만 수백 명이 거기서 저를 보고 아이키도를 시작했다고 말해요.어쩌면 저는 쇼맨일 수도 있지만, 그래야만 했어요.

기욤 이라드 : 베르씨는 기회를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서였다면, 컴뱃 게임즈도 그런 건가요?

크리스찬 티시에 : IAF(국제합기도연맹) 문제는 미묘합니다.아이키카이는 어떤 정통성을 필요로 하죠.왜인지 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도주는 올림픽위원회의 인정을 원하고 국제조직의 일원이 되고자 합니다.그러한 열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에 목을 매진 않아요.좀 복잡하죠.IAF는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그 나름의 가치가 있어요.많은 사람들이 그게 경쟁을 촉발하리라 불평했지만, 거기엔 어떠한 대련이나 점수판정 따위는 없었어요.목표는 구습을 타파하자는 거였고, 그게 제가 맘에 들어한 부분이었죠.35세 이하, 4단 이하의젊은 남성, 여성들이아이키도가 어떤 건지 보이는 것.지난 번에는 미야모토와 함께 챙겨보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사람들이 와서, 자기들이 할 걸 보이면 저희가 약간의 조언을 줘요.몇몇은 훌륭한 수준이지만, 몇몇은 아니죠. 국적과 경험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뭔가 해보려 노력하는 거죠.첫 번째 컴뱃게임즈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상뜨페테르부르크에서는 아주 좋았어요.아이키도의 아름다운 이미지들.물론, 여전히 그건 아이키도가 아니라며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그 사람들이 자기들의 아이키도를 제게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보인 다음 비판을 감수할 용기가 있는지도 말입니다.요청을 받아서 간 거죠. 다른 누가 가도 상관없을 거예요.솔직히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저는 의무를 지고 있으니까요.지난 9월의 IAF회의는 루마니아의 클루지에서 열렸죠.차기 도주가 몇몇 내제자들과 거기 있었지만, 저는 갈 계획이 없었어요.요청 받은 적도 없고, 그날 세미나가 계획되어있었거든요.아이키카이가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국제부의 타니가 저보고 참석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어요.

기욤 이라드 : 얼마나 일찍부터 커리어 플랜을 짜신 거죠?

크리스찬 티시에 : 그전까지는 아무 계획이 없었어요. 전혀.일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 거예요.저는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아요. 그냥 일이 조금씩 생기죠.어떤 사람은 제가 규모확장에 혈안이라는데 저는 한번도 그런 걸 추구하지 않았어요.저는 프랑스문화원에서 불어를 가르쳤죠. 불어에 능통하니까요.일본에서 TV에 나오기도 했죠. 모델로요.프랑스에서의 첫 인터뷰는 말을 더듬지 않고 잘 진행됐죠.TV쪽 사람이 다른 운동선수들과는 좀 다르다고 말하더군요.저는 결코 TV나 잡지를 부른 적이 없어요.가라데 부시도(잡지)에 물어봐요. 그 사람들이 날 부르는 거라니까.

기욤 이라드 : 과거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게 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내가 뭘 바꾸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완벽한 건 없으니까.

기욤 이라드 : 기욤: 오해를 산 일들은?

크리스찬 티시에 : 오해야 언제든지 있죠. 인정합니다.하지만 그건 매일 일어나요.물론, 내가 갖지 말았어야 하는 인간관계도 있었죠. 후회도 하고.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예요.때론 제가 누군가에게 아주 심하게 굴어서 그가 아이키도를 그만두는 지경이 되었는데도 눈치를 못채기도 하죠.그건 제 잘못이고, 관용이 부족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사람도 제가 원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 거죠.그런 일은 매일 일어나요.제가 아주 나쁜 짓을 저질렀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없네요.

기욤 이라드 : 무릎 수술을 전에 언급하셨는데, 그게 당신의 아이키도를 바꾸었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괜찮긴 한데, 시간이 흐른다고 더 나아지진 않네요.제 무릎이 망가지기 시작했을 때 저지른 실수는 후회하죠.시바타, 미야모토와 꽤 경쟁적으로 굴던 시절이었죠.무릎 연골이 망가졌는데도 도장에 와서는 나무바닥 위에서 1시간 정좌를 하면서 고통스러워했죠.정말 바보스럽지만, 나름 무사 흉내를 냈던 겁니다.수년 후에 수술을 받고 그 다음날 바로 디종에서 강습회를 열었어요.멍청했어요.이후 저도 생각이 바뀌어 무릎이 안좋은 사람을 보면 건강이 우선이라고 말하죠.엔도 선생이 자주 말하던 게 생각나네요.처음 엔도를 만났을 때 그는 아주 거칠고 폭력적이었어요.어느날 그가 도주와의 연무에서 어깨가 부러졌어요.야마구치 선생이 그에게 말하길 "네 나이에 망가진 어깨를 갖고도 그런 식으로 계속하고 싶나?"만일 그렇다면 넌 이제 가망이 없으니 아이키도를 그만둬.그는 생각 끝에 자신의 아이키도를 바꿨어요.제 경우에는 부상이 제 아이키도를 바꾸진 않았어요. 저는 이 무릎으로도 연습이 가능하면 좋겠어요.내가 뭘 할 수 없다고 설명해야 하는 건 아주 좌절스럽죠.다른 사람보고는 하라고 해놓고 나는 말만 하는 건 정말 짜증스러워요.무릎이 굽혀지지 않아 몸을 낮출 수 없는 건 정말 신경쓰여요.1교나 2교는 무릎을 굽힐 수 있는 쪽으로만 하게 되죠.그것만 빼고는, 제 아이키도의 커리어는 나쁘지 않아요.수련 중에 즐거운 일도 많죠.아직은 제가 서있을 때는 하고픈대로 할 수 있지만, 그게 안되는 날에는 보이는 걸 그만둘 거예요.젊고 건강한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보여주는 건 웃기는 짓이예요.

기욤 이라드 : 오늘날 제자들을 보면, 당신이 전수하고자 한 게 전해졌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최근 들어 생각하고 있는 주제네요.제 제자들은 몇 개의 세대로 나눌 수 있어요.프랑스 협회의 선생들 대부분을 제가 가르쳤죠. 몇몇 다른 나라도 그렇고요.제라드 뒤몽 같은 1세대는 여기서 좀 논외고요.그 다음이 패트릭 베네치와 버나드 파미,다음이 필립 고타드, 그 다음이 파스칼 노벨리인데 일본에는 덜 알려졌죠.마지막 2개 세대가 바카티, (브루노) 곤잘레스, 파스칼 기망인데 훌륭한 경력을 유지하고 있죠.지금은 파브리스 크와제가 헬레네가 5단이 되었구요.그리고 후일 보게 될 현재 3단이고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몇몇 젊은이들.

기욤 이라드 : 선생으로서 가까운 제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나요?

크리스찬 티시에 : 저는 요구하지 않아요. 배우길 원하는 사람에게 지도할 뿐이죠.그들이 여기 있는 한, 저도 여기 있으면서 최대한 많이 가르치려 노력하죠.아무 댓가도 요구하지 않아요. 선생 행세를 하지도 않죠. 그들에게 가방을 들라고 하지도 않아요.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죠.제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고, 제 가족, 아이들, 하는 일 모두사랑하니 문제가 없어요. 그게 이유일 겁니다.제가 요구할 게 뭐가 있겠어요.제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 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댓가는 바라지 않아요.몇몇 아이키도 선생들은 제자들을 아주 꽉 쥐는 것 같던데제자들을 유지하기 위해 잇속 또는 지배욕에서 비롯되는 건지도 모르죠.저는 그렇지 않아요.저는 자주 보진 않지만 여전히 연락하는 옛 제자들이 많아요.그들은 자기 도장을 차렸고,지금 50, 55세이고 자식이 있으니 가끔 오죠.그들이 하는 것은 훌륭하지만, 제가 지금 하는 것과는 달라요.기욤: 그들이 당신의 진화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그들은 그들 자신의 진화가 있으니 따르지 않죠.전혀 반대하고픈 마음이 없어요.하지만, 그들이 지금 클래스에 오면, 그들은 뭔가 단절되어서 이걸 할 수 없다는 걸 느끼죠.때로 이게 그들이 발길을 줄이고 서로 덜 보게 만들기도 해요.이게 제가 일본에서 1976,7년에 돌아왔을 때, 10년간 1년에 2회, 4개월씩 일본으로 돌아간 이유예요.야마구치 선생과 계속 이어져있기 위해서요.그는 1년에 2번 프랑스에 왔고, 저는 겨울에 2달, 여름에 2달씩 일본에 머무는 걸 10년동안 계속했어요.그후 1982년에 아들이 태어났고 5,6단이 되자 예전처럼 일본에 가지는 않게 된 거죠.그 관계를 유지하는 건 중요했어요. 야마구치 선생의 아이키도는 3개월마다 바뀌었으니까요.원리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뭔가 달라요. 그러니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죠.


한국어 번역, 자막 : 성주환 AikidoK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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