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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soyama 012이소야마 히로시磯山博 8단의 인터뷰입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1부입니다. 2, 3부는 계속 게시됩니다.

이소야마 히로시 선생은 창시자의 내제자이며, 1937년생으로 12세인 1949년에 아이키도를 시작했습니다. 1958년 일본 항공자위대에 입대, 미 헌병 및 일본 자위대원을 지도했습니다.

이와마岩間 도장을 이끌던 사이토 모리히로斎藤守弘 9단(1928~2002)이 사망한 후, 최고 고문역을 맡아 도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또한 스티븐 시걸에게 영향을 준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기욤 에라 루 : 아이키도를 아주 어릴 때 시작하셨는데, 그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이소야마 히로시(이하 이소야마) : 다른 선생들은 그런 질문에 대해서 큰선생의 말씀에 감명을 받았다든가, 아니면 그게 '화和의 무도'인 걸 알고, '그렇다면 나도 꼭'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데 저는 아닙니다.

딱 까고 얘기해자면, 싸워서 지기 싫었어요. 그게 제가 중학교 1학년, 12세 때였어요. 1949년인가? 1949년 6월 1일로 기억해요.

기욤 에라 루 : 이와마 도장의 수련 내용은 어떠했나요?

이소야마 : 당시에는 도장에 다다미가 없었어요. 마루바닥. 그러니 던지기라 해도 지금처럼 '팡, 팡, 팡' 소리를 내며 다다미를 치면서 수신(낙법)을 하는 식의 던지기는 아니었죠.

우선, 처음에, 큰선생의 수련이란 가볍게 쉽고 부드러운 기술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어렵고 강한 것을 하는 식어었죠. 처음에는 좌기. 그 다음에 차츰 반신반립기, 입기.

기욤 에라 루 : 인터뷰어인 기욤은 앙드레 노케*의 그룹에서 아이키도를 시작했습니다. 앙드레가 일본에 있을 때 이와마 도장을 자주 방문했나요?

이소야마 : 여기 말인가요... 내가 있는 동안에 몇번 보긴 했지만, 그리 빈번하진 않았어요.

제가 큰선생과 도쿄의 본부도장에 갔을 때 몇번 함께 수련했죠.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노케 씨는 체격이 아주 좋았지만, 그가 2교를 거는데 나한테 전혀 먹히지 않았어요.


앙드레 노케, 1914~1999. 창시자의 첫 외국인 내제자.

그런데 내가 걸면 먹히거든. 이상했겠죠. 이상하다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기쇼마루 선생(2대 도주)이 와서는 '노케 씨,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거요.'라면서 제 손목에 팍 하고 기술을 걸었죠.

그런 추억은 있습니다.

기욤 에라 루 : 선생이 입문한 당시, 기술들은 '교教'가 아니라 '조条'라고 불렸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에 더 가까웠던 건가요?

이소야마 : 그건 틀림없어요. 제가 창시자에게 배울 당시에는 '일개조一カ条', '이개조二か条', '삼개조三か条' 등으로 불렀어요.

하지만 앙드레 노케 씨가 프랑스에서 도쿄의 본부도장에 내제자로 왔을 때는 소위 교본 따위가 없었어요.

그래서 기쇼마루 선생이 처음 '아이키도合気道'*라는 책을 냈을 때 일개조, 이개조, 삼개조가 아니라 일교, 이교, 삼교라고...

이건 말이죠, 고류 유술에서는 '일개조, 이개조, 삼개조'라고 가르치는 곳, '일교, 이교, 삼교'라고 하는 곳도 있어요.*
★'조条' : 조항, '교教' : 가르침

'교教'란 말이죠, 전 처음에 이게 뭔지 몰랐어요. '1교, 2교...', '教'라고 쓰는데, 책을 읽고서야 어느 한자를 쓰는지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때였나, 손목뒤집기小手返し는 그대로인데, 2교 우라二教裏는 손목돌리기小手廻し라든가 그런 이름을 썼어요.

곧 다시 되돌린 것 같지만.

기욤 에라 루 : 왜 '조条'에서 '교教'로 이름을 바꾼 걸까요?

이소야마 : 글쎄요, 기쇼마루 선생이 어떤 생각을 하셨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대동류 시절에는 '일개조, 이개조'라는 식으로... 다케다 소가쿠 선생에게 받은 두루마리에는 '일개조, 이개조'라고 되어있죠.

아마 어느 정도는 그런 것들에서 탈피하려 한 게 아닐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만.

기욤 에라 루 : 아이키도의 '교教' 5개의 구성은 대동류의 그것과 대단히 흡사합니다. 이유를 아시나요?

이소야마 : 그 옛날의... 큰선생이, 제가 시작한 1949년 당시의 기술과 큰선생의 만년의 것과는, 같은 일교一教라 해도 조금 달랐어요.

예를 들어 대동류는 '일개조一カ条'라는 건 여러 기술의 세트인데, 사실 이건 아이키도도 같아요.

예를 들어, '1교'도, 사실 정면타, 횡면타, 한손잡기 등 여러가지로 나뉘죠. 1교도 여러가지가 있는 거죠.

그래서 옛날에는 '기본기만 해도 2천 몇백 개' 라는 식으로 자주 얘기했어요.

기욤 에라 루 : 만일 1교에서 5교까지의 기술이 원리라 한다면, 이것을 손목뒤집기, 팔꿈치굳혀누르기(6교), 사방던지기도 그렇지 않나요?

이소야마 : 음, 기술 이름에 '교'가 붙었느냐 여부가 그 기술의 경중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봐요.

예를 들어, 1교부터 5교까지의 기술은 모두 제압기죠. 그리고 손목뒤집기, 사방던지기, 입신던지기같은 기술은 던지기예요.

그러니까 각각 이름에 따라 특징이 다른 거지, '이 기술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이 기술은 중요해'라는 식의 분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기욤 에라 루 : '合気道'라는 이름은 위원회가 제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요?

이소야마 :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책에 그리 써있더군요. 어떤 책에요.

분명 무덕회武徳会에 히라이 미노루平井稔선생이 큰선생의 대리로 지도하러 갔죠. 큰선생의 제자였으니까요. 

당시 무덕회에 대동류 합기유술로서 간 건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처음으로 '合気道'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라고 봐요. 저도 그건 모르겠네요.

단, 제가 말이죠, 입문할 당시, 여기는 분명 '재단법인 아이키카이財団法人合気会'였어요.

재단법인 아이키카이가 일본 문부성의 인증을 받은 게 1947년입니다. 그 이전에는 재단법인 코부카이皇武会로 불렸죠. 이건 좀 오래된 얘기예요.

그러다가 2차대전 종전 후, 1947년으로 생각하는데, 문부성이 재단법인 아이키카이로 승인했어요.

당시 '아이키合気'라는 용어는 확실히 쓰고 있었어요. 제 입문신청서에도 '대동류합기유술 문인첩門人帳'이라 쓰여있었죠.

거기에 저는 사인했죠. (전부터 사용하던) 그 문인첩의 첫 부분에는 타케시타 이사무竹下勇 해군 대장 같은 사람의 이름들이 적혀있었어요.

기욤 에라 루 : 그 이전에는 우에시바 선생의 무술은 어떻게 불렸나요?

이소야마 : 아이키도合気道(합기도)가 되기 전에는 아이키부도合気武道(합기무도)라고는 불렀어요. 아이키부도(합기무도).

우리는 그냥 처음부터 '아이키, 아이키'라고 불렀어요. '아이키도'가 아니라. 여기에 입문한 당시에는. 아이키도가 아니라요.

그 전에는, 전쟁이 끝나기 전인가, 아마도 1945년 이전일 거예요. '합기무도' 등으로 부른 거는.

기욤 에라 루 : 선생은 큰선생이 이와마로 이주한 직후에 입문하셨는데, 당시 아이키도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소야마 : 흠, 그건 말이죠. 저는 전쟁이 끝난 게 어떤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저는 당시 어려서 잘 모르지만, 큰선생이 여기 왔을 때, 그의 건강이 약간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병이 걸려서.

그때까지는, 여기서도 보듯이, 콧수염만 길렀죠. 그런데 여기 오고부터 턱수염도 기르기 시작한 듯 합니다.

제가 입문한 1949년 당시에는 그의 수염이 벌써 이랬어요.

합기신사合気神社가 1943년에 세워졌고, 그 이전에는 가끔씩 방문했죠.

그리고 종전이란 큰 예도 있고, 그것도 약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오모토교大本教 사건*이 있었죠. 큰선생은 전혀 끌려가거나 하진 않았지만요.
★ 일본 내무성에 의한 종교탄압사건. 오모토교는 2차대전에 협력하지 않은 소수의 종교 중 하나

기욤 에라 루 : 이러한 변화에 있어 기쇼마루 선생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이소야마 : 음, 예를 들어, 큰선생과 기쇼마루 선생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큰선생은 조직이란 것에 그리 흥미가 없었어요.

그건 그럴 수 밖에 없겠죠. (그분은) 없던 길을 만들어왔으니.

그런데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혔을 때, 기쇼마루 선생은 이것을 조직화하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죠.

만약에, 2대 도주 기쇼마루 선생이 창시자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아이키도는 없었을 겁니다.

아이키카이. 이 조직말이죠.

그런 점에서, 기쇼마루 선생은 아이키도계에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책을 냈을 때도, 완전 처음인 사람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몇 교'라든지 '몇 조'라는 등의 용어를 안 쓰려했어요.

그래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말로 해서.

기욤 에라 루 : 오늘날의 아이키도에 있어서 이바라키 도장은 무엇인가요?

이소야마 : 어렵네요. 정말 어려워요.

현재 도주(3대 우에시바 모리테루)가 1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지도를 하죠. 그리고 와카 선생(4대 우에시바 미츠테루) 역시 수요일에 와서 지도합니다.

도주는 매주 토요일 수련을 지도하도록 되어있는데, 바쁘죠. 매월 1, 2회는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본부와 이 도장을 일체화하려 하지만, 그래도 이곳의 수련 내용이 약간 달라서 혼돈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에시바 모리테루 도주. 합기대제合気大祭에서. 2013년

그래도 이제는 잘 되고 있어요. 그리고 더욱더 이곳의 지도자들과 본부의 지도자들이 교류하고 소위 정신적인 면이든 뭐든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면 좋은 방향으로 가리라 봅니다.

기욤 에라 루 : 아이키도가 무기술에서 비롯되었다는 언급에 동의하시나요?

이하 이소야마 :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키도의 경우 예전부터 그렇게 언급되었죠. 무기술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역시 무기술, 도구를 가진 상태의 움직임은 맨손의 움직임과는 조금 다르죠.

하지만 내가 입신入り見이나 몸놀림体捌き같은 움직임을 가르칠 때, 도구를 들고 하는 편이 학생들이 이해하기가 쉽죠. 체술만 할 때보다. 그런 점에서 지도할 때나 연습할 때 무기와 연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게다가, 예를 들어 정면타正面打ち를 한다고 했을 때, 검이나 장 같은 무기를 갖고 하는 것과, 맨손으로 하는 건 완전히 다르죠.

물론 도구를 갖고 있냐 없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몸놀림은 같아요. 예를 들어 입신을 할 때, 제대로 하면 상대가 검이나 장을 갖고 있어도 파고들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요즘 하는 식으로 하면, 상대가 무기로 제대로 치면 얻어맞거나 찔리죠. 그러므로 몸놀림의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맨손만이 아니라, 검이나 장을 갖고서요.

그리고 비록 검, 장이 저희 수련의 중심은 아니지만 제가 사람들을 지도하는 방식에 반영하고 있죠.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움직임이 달라져요.

기욤 에라 루 : 체술/검/장의 통합 이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소야마 : 이미 말했듯이 움직임은 조금 다르죠. 달라요. 하지만, 검이나 장 같은 무기를 든 채 올바른 몸놀림을 할 줄 안다면, 맨손으로도 그게 가능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체술만 하면, 상대가 무기를 들었을 때 되치지를 못해요.

물론, 상대가 당신의 움직임에 맞춰서 수신受け身을 해주는 식으로 배웠다면 가능하겠죠.

하지만 상대가 진짜로 팟 하고 덤벼드는데, 그런 식으로 파고들 수 있습니까?

또한, 상대가 무기를 가지면 정신적으로도 달라져요. 긴장하게 되죠.

학생에게 그러한 긴장감을 경험시키기 위해서 라도 검과 장을 함께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기욤 에라 루 : 어떤 부분에서 큰선생이 수련에 무기를 사용했나요?

이소야마 : 말씀드렸듯이 몸놀림과 입신이죠.

몸놀림. 입신. 이것을 이해시키려고 연무했죠.

큰선생은 말이죠. 비좁은 공간에서라도 아이키도 얘기를 할 때, 아이키도에 대해 얘기하고 설명하는데, 우리가 동행한 경우라면 대화 중에 갑자기 누구를 지목해서는 기술을 시연하고는 했어요.

아니면 차를 마시던 중이거나, 얘기하던 도중에도 '이봐, 잠깐. 이리 좀 와보게.' 하고는 팟 하고 해버리시죠.

입신이나 몸놀림이 그저 설명만 한다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누군가를 써서 직접 보여주는 거죠.

만일 검, 장이 없을 땐 체술을 보였지만, 있으면 검, 장을 썼어요.

연무 중에도 입신이 무엇인지를 검이나 장을
사용해서 보여주었죠. 무기 사용법이라기 보다는 검, 장을 가진 상대를 어떻게 되치는가에 대한 것이었죠.

기욤 에라 루 : 좌기座り技의 교육적 목적은 뭔가요?

이소야마 : 좌기를 하면, 입기立ち技와는 달리 꼼짝도 못하죠.

처음 하게 되면, 무릎걸음도 제대로 하지 못해요.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하체가 튼튼해야 하죠.

예를 들면 유도에는 누운 기술이 있지만, 아이키도에는 그런 게 없어요. 과거에는 몇몇 선배가 '아이키도에는 누운 기술이 없다지만, 대신 좌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역시 일본의 생활 양식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게 모든 기술의 기본이 되는 움직임, 다시 그 속의 기본이 아닐까.

그래서 좌기는 아주 중요해요.

기욤 에라 루 : 요즘의 좌기는 큰선생이 하시던 간결한 방식이나 대동류 수련자들이 하는 방식과도 달라보입니다.

이소야마 : 글쎄... 거기에는 적절한 답변을 해드리질 못하겠네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확실히, 큰선생의 옛 영상을 보자면 그 자리에서 그리 크게 움직이지 않아요. 하지만, 요즘의 좌기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발끝으로 서다시피 하죠.

하지만, 과거에 행하던 좌기의 방식은 정좌에서 정좌로 이동하는 거나 같았어요. 정좌했다가 빨리 움직이고, 그 사이에 발끝으로 잠깐 서긴 하지만, 마무리 제압은 정좌에서 했죠.

큰선생이 만년에 당신의 몸을 충분히 움직이지 못하거나 불편했던 것도 이유가 아닐까 해요.

그러다보니 정좌로 앉아있기 보다는 무릎으로 선 것처럼 보였죠.

기욤 에라 루 : 큰선생과 함께 한 20년 간 그의 아이키도는 변화했나요?

이소야마 : 많이 변했어요.

큰선생은 자주 고체個体, 액체液体, 기체気体나 원, 사각, 삼각에 대해 말씀하셨죠.

신토에서 온 거죠. 이쿠무수비生産霊*, 타루무수비足産霊**, 타마츠메무수비玉留産霊***.
★ 삼각. 생산과 창조의 힘.
★★ 원. 풍요와 통합.
★★★ 사각. 신체에 혼을 불어넣는 힘.

저는 서예의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라고 말하죠.

선생은 수련 중에 고체, 액체, 기체에 대해
많이 언급했어요. 저도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도 있지만, 역시 해서, 행서, 초서 쪽이 이해가 편하죠. 일본인이라면 서예를 조금은 했을 테니까.

처음 배우는 게 가로선과 세로선을 긋는 법이죠. 그 한 줄 안에 기질, 운필 등이 나온단 말예요.

처음에, 붓에 적절히 힘을 넣었다 빼는 법을 배운 다음 행서로 가죠. 행서 다음은 슥 하고 어디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모를 흐르는 서체.

기술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기술이 아무리 변해도 이런 3가지 방식을 할 수 있도록 수련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굳건한 기술, 행서行書처럼 약간의 움직임이 가미된 기술,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진 기술.

이게 제가 더이상 제 몸을 잘 가누지 못해도 여전히 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하나를 잘못하면, 다음 것으로 넘어갈 수 없어요.

요즘 사람들이 보여주는 걸 보자면, 실제 수련하는 건 '단단한 수련부터 하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부드러운 수련'을 하는 걸로 보여요.

제가 큰선생에 처음 입문했을 때의 기술은 해서楷書에 가까웠어요.

저는 큰선생 밑에 20년 동안 있었지만, 당시에도 그의 기술은 만년에 들면서 바뀌었어요.

80세가 넘어서 체력이 떨어지면, 60대에 했던 기술을 할 수 없게 되죠. 그러자 큰선생은 상대를 부드럽게 움직이게 만들었어요.

그건 상대가 일부러 움직여주는 것과는 달랐어요. 큰선생이 그가 움직이게 만들어버렸죠.

상대가 큰선생을 위해 움직여주는 게 아니라, 큰선생이 그가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태를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큰선생의 기술이었어요.

예를 들어 큰선생이 입신을 할 때, 분명 제가 닿지도 않았는데 던져졌을 때가 있어요.

어떻게? 마치 제가 슥 하고 빨려들어 가다가 슥 하고 던져지는 거예요.

한 번은, '이번에는 못 던지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좀 버텼죠. 네.

(이자와 케이 : 저항하셨나요?)

네, 저항. 그랬더니 쾅!

그러니, 그런 쓸데 없는 저항은 더 이상 안 하게 돼요. 그런 경험이 있으니 제대로.

요즘 사람이 하는 걸 보면, 스스로 몸을 굴리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자주 봐요. 같은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어요.

요즘은 심지어 목만 까딱 움직여서 상대를 구르게 만드는 사람도 있죠. 연무에서 말이죠.

이렇게 하면, 상대가 휭 하고 이렇게 날아가죠.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 큰선생이 그런 걸 하시는 걸 한 번도 못봤어요. 한 번도.

그 선생들이 큰선생을 넘어선 걸수도 있겠죠. 그들이 얼마나 수련을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실제로. 이렇게 하면, 상대가 이렇게 날아가는.

하지만 제가 경험한 입신던지기는 아까 얘기했듯이, 마치 제가 슥 하고 이끌리면서 부드럽게 움직인 다음 팟 하고 잡아채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건 제가 실제로 체험한 거죠.

기욤 에라 루 :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은 단독 연습도 하셨나요?

이소야마 : 음, 큰선생은 종종 '아이키도는 정화禊다.'라고 말씀했어요.

소위 신토에서 계禊ぎ를 위해 노젓기 등을 하죠. 그런 건 창시자와 함께 하곤 했죠.

여전히 노젓기 운동을 하잖아요? 이렇게 말하자니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요즘 하는 노젓기 운동은 '노젓기 운동 비슷한 운동'이에요.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요.

기욤 에라 루 : '힘을 쓰라'고 하시는 쪽인데, '힘을 쓰지 않는 타입'의 아이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하 이소야마 :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힘이 있는 동안에는 힘을 내'라는 쪽이죠. 예를 들면, 힘이 넘치는 시기에 '힘 쓰지 마, 힘 쓰지 마' 이런 말만 들으면
만족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더, 더!'하면서 힘을 쓰다보면 수련을 하면서 그게 쓸 데 없는 거라는 걸 깨닫게 돼요. '내가 쓰는 힘은 쓸 데 없는 거구나'하고.

몸으로 직접 느끼지 않으면, '아이키도는 힘을 내면 안 되는 무도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려요.

그러니 아무리 용을 써도 힘을 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체험시키려면 역시 '힘을 내게' 하죠. 젊은이에게는. '읏샤' 하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요즘은 움직임을 주체로 한 수련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쨌든 '젊은 시기에 힘을 못 쓰게 하면 안 된다', '힘을 써', '쓸 수 있는 건 다 써 봐'라고 해요. '돈이 있으면 돈도 써!'라고도 하죠.(웃음)

그러니까 '어쨌든 힘을 내'라고. 그런 다음에야 '내가 이렇게나 용을 쓰는 데도 왜 안 되지?'하고 생각하겠죠.

우리가 큰선생에게 배울 때는 그랬거든요. 예를 들어, 마지막에 앉아서 호흡법呼吸法을 하잖아요? 우리가 하던 때랑 지금 하는 거랑은 좀 달라요.

우리는 이렇게 슥 하고 누르다가 팟 하고 펼쳐올리는, 이런 식으로 안 했어요. 물론, 방법의 하나로서는 있었죠.

하지만 제가 큰선생의 가슴 따위를 꾹 하고 누르면 내 손이 저릴 정도였어요. 팔이 점점 접혀서 제 이마가 큰선생의 가슴에 닿을 정도였죠.

손이 아니라 머리로 미는 셈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큰선생이 '이소야마, 네가 염소냐?'라고. '머리로 밀지 말고, 손으로 밀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러니 '아무리 힘을 써서 밀어도 안 되는구나'하고 납득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가진 힘을 반도 안 썼는데 던져졌다면 납득하겠어요? 안 되죠.

그리고 제가 전에 말했던 제임스 펄슨 등의 헌병을 가르쳤을 때, 그 사람들을 여기에 몇 명 데려온 적이 있어요.

제가 그들 앞에서야 '팡, 팡'하고 던지잖아요? 그러니 제가 아주 세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큰선생한테는 아주 종잇장처럼 던져지거든. 그걸 보곤 '말도 안 돼'라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제가 이렇게 밀어도 밀리질 않아요. 그 사람들로서는 '당신이 저런 노인에게 당할 리가 없잖아. 사기 치지마.'라고.

그래서 '해보면 알잖아.'라 말했죠. 큰선생께 가서 조금만 부탁드린다고 했어요. 큰선생이 '이리 와보게'라고. 당연히 안 되죠. 그래서 납득했어요.

이거 실제로 있었던 일이예요. '당신이 말이야, 그런 할배에게 당할 리가 없잖아'라고. 믿지를 않았어요.

기욤 에라 루 : '내적 수련'이 요즘 회자되고 있습니다. '내内'와 '외外'를 구분하시나요?

이소야마 : 음... '안'과 '밖'이란 것이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되는데... '외면'이란 건 역시 체술, 검술... 몸을 움직이는 거죠.

'내면'적인 것은 정신적인 면. 그리고 한 가지 더 호흡법적인 것도 있지요. 굳이 보자면 저는 정신적인 면말이죠. 이게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역시 아이키도란 그저 다투지 않고 싸우지 않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듬기 위한 무도죠.

그러러면, 모두와 협력해야 하죠. 사욕私欲을 버려야 해요. 그걸 확실히 몸에 익히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보면, 사욕 쪽이 먼저 튀어나오죠. 그건 어쩌면 자신의 인간성을 다듬으려는 노력도 안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만일 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또 그와 같은 제자가 나와버리겠죠.

기욤 에라 루 : 지도 중에 '기気'를 언급하시나요?

이소야마 : 합니다. 그건 중요해요. 큰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힘은 빼도 기는 빼지 마라'고.

나보다 경력이 짧은 사람, 힘이 적은 사람에게는 힘을 빼고 맞춰줘야 하죠.

그런데 관절기 같은 경우에 몸에 힘을 빼고 상대에게 그냥 몸을 맡겨버린단 말예요. 그때 기를 빼고 정신을 딴 데 팔면 부상을 당해요.

그래서 큰선생은 이걸 정말 많이 말씀하셨어요. '힘은 빼도 기는 빼지 마라.'고.

'기'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이키도에서 말하는 거는 소위 '긴장을 풀지 마気を抜くな, 방심하지 마気を緩めるな' 이런 뜻이예요. 그러니 '기'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 요즘은 왜 '기'를 잘 강조하지 않게 되었냐? 그건 상대가 움직여주니까 그래요.

앞서 말했지만, 큰선생은 내가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움직임을 하셨어요. 요즘은 내가 안 움직여도 상대가 움직여주잖아요.

기가 필요 없잖아요. 그렇잖아요?

기욤 에라 루 : 예전에 도미키 켄지富木謙治* 선생을 언급하셨습니다. 큰선생은 아이키도에 경쟁이 없어야한다고 왜 그렇게나 강조하셨을까요?
★ 1900~1979. 아이키도가, 유도가. 교육학자. 일본합기도협회日本合気道協会 창설자. 만주건국대학 교수, 와세다 대학 교육학부 교수 역임.

강도관 유도 창시자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郎의 제자였으며, 우에시바의 연무를 본 가노가 도미키를 파견하여 아이키도에 입문. 아이키도 성립기에 이론면에 영향을 끼치고, 자신이 고안한 경기競技 아이키도의 보급 발전에 노력했다.

유도 '호신의 본' 제정을 주도하였으며, 해당 본은 아이키도의 기술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유도의 경기 체계에 착안하여 아이키도에 대련을 도입했다.

대련 및 시합의 도입에 따라 타류 아이키도와 구별하기 위해 '도미키류富木流 아이키도', '도미키富木 아이키도' 등으로 주로 불리나, 도미키 자신은 그저 '아이키도'로 칭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도미키의 이러한 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소야마 : 사람들은 '화和의 무도'니까 시합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화'는 뭔가요?

'화'라는 건 단순히 다투지 않거나 싸우지 않는 것만이 아니예요.

무언가를 통해서, 예를 들어 아이키도를 하는 사람은 아이키도를 통해서, 어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은 생각을 갖고 함께 하는 동료를 확실히 만드는 거죠.

이건 어쩌면 종교적인 것과도 상통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본래의 종교라는 건, 저는 요즘의 것과는 생각이 달라요. 요즘은 그렇잖아요. 종교가 다르다고 상대를 부정하고 다투잖아요.

무도도 똑같아요. '상대를 인정해준다', '이해해준다' 그런 마음이 있으면 상대도 나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 것만 이해시키려고', '인정하게 하려고' 하니까 다투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우선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여러 회의에서 논쟁이 일어나잖아요. 이때 자기 주장만 반복해서는 전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죠.

그럴 때 '당신 말 중에 이건 옳습니다. 그 부분은 받아들이죠'라고 하면 그걸 계기로 해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다고 봐요. 그걸 배우는 게 아이키도예요.

우선은 상대에게 맞춰준 다음에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게 만드는 것. 그게 큰선생의 움직임이었어요.

아까 잠깐 얘기했던 건데, '상격相打ち'이라고 있잖아요.
★ 서로 때려 죽는 것

그런데 큰선생은 '상피相抜け'의 정신이었어요. '상피'란 '상대도 다치지 않고, 나도 다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야만 해요. 그저 '아이키도는 화의 무도'라고만 하면서 스스로는 인간성을 다듬는 수행도 없이 그저 사람을 무조건 모으기만 하면서 사욕을 부리면 안 된다고 봅니다.

사욕이란 건 정말 강해서 언제라도 튀어나오려 하지만, 그런 걸 염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욕구를 제어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욤 에라 루 : 아이키도의 정수를 배우려는 외국인을 많이 만나셨는데요. 이들이 아이키도에서 찾으려는 건 뭘까요?

이소야마 :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죠. 하나는 '일본 문화로서의 아이키도.'

그리고 아이키도의 좋은 점. 아까도 말했지만. '기'. 이런 건 다른 스포츠에는 별로 없어요. 그런 신비적인 것을 그들이 찾기도 하죠.

그런 와중에 평소의 수련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죠.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나?

얼마 전에 덴마크에서도 온 사람이 있는데 '여기 오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왔다죠.

저는 정말 이런 것에 감사해요. 모두들 바쁜 데도 먼 길을 찾아와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준단 말이죠.

요즘 일본에 이런 선생이 있을까... 제가 물으러 다닌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일본인 선생 중에 외국인이 뭘 물으러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여기 상像이 있잖아요. 동상을 세웠을 때, 합기도 신문*에 '건립 기금이 얼마인데, 구좌 당 얼마씩 모금을 한다'고 알렸단 말예요.
★아이키카이 본부에서 매월 발행하는 신문.

8단 선생이었나요... 자기 도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지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이 '저 동상 어디서 나온 거요?'라고 묻는 거예요. '저 뒤에 작은 동상은 만든 겁니까?'라고.

합기도 신문을 한 번 훑기만 하면 아는 일인데, 그런 걸 묻고 있으니... 그건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기욤 에라 루 : 지금부터 올바른 아이키도를 전파하는데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소야마 :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역시 사욕을 버리는 거죠.

'아이키도를 진지하게 추구할 것.'이라고 저는 지금도 스스로 되새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이해해주리라 생각해요. 특히 지도할 때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되새기고 있어요.

어렵지 않아요. 그냥 사욕을 버리고, 아이키도에서 자신이 창시자에게 배운 것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올바로 전하겠다는 거죠.

그건 당연히 기술적인 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도 포함하죠. 그게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욤 에라 루 : 정신적인 면에서, 우에시바 선생의 아이키도를 이해하려면 오모토교大本教*를 공부해야 할까요?
★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오모토교의 독실한 신자였다.

이소야마 : 음... 선생은 분명 거의 신에 관한 이야기만. 90% 이상이 신에 대한 이야기였죠.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큰선생이 오모토교의 신자가 되고서 개안開眼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긴 하죠. 저는 뭐 오모토교든 뭐든 배워서 나쁠 건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해요.

저야 개인적으로 그럴 필요는 느끼지 않지만요. 부정하지도 않아요.

기욤 에라 루 : 국제합기도연맹国際合気道連盟에 오랫동안 관여하셨습니다. 당 조직의 이상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소야마 : 47개국, 서로 다른 인종에 사고방식도 서로 다르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역시 서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4년에 한 번 총회가 있잖아요. 총회를 할 때, 회의도 좋지만, 가능한 한 서로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국제대회에서 강습회는 예전부터 같이 했어요. 하지만 연무대회가 열리기 시작한 건 최근부터예요. 소메미야 씨가 사무총장이었던 시절에 한 거죠. 그걸 제안한 게 저예요.


제12회 국제합기도대회 연무대회, 타카사키, 2016년

기왕 모였으니 5분, 3분이라도 좋으니 모두에게 연무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하고.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너무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연무란 건 신기하게도 그 나라의 특징이 드러나요. 제대로 지도하고 있는지, 어떤 기술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가, 그런 게 보이죠. 평소 어떤 수련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하나의 세계적인 조직이니까, 크게 될 수록 내적으로 충실한 조직이 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기쇼마루 선생 당시의 일인 것 같은데, 전일본대회 등으로 조직이 너무 커지면, 거꾸로 아이키카이合気会가 유지되기 힘들 거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도 있었지만, 제 생각에 그건 하기 나름이죠.

엉뚱한 짓을 하면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정신이 올바른 사람을 잘 모아서 일본 문화의 좋은 점을 배우도록 권하고, 그렇게 하면 그런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한국어 번역, 자막 : 성주환 AikidoKR.net